"박지영
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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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소주예찬’명구가 있어 잠시 소개한다.‘진정한 술꾼은 주종을 가리지 않는다지만 마셔도 마셔도 헛배만 부르는 맥주보다도, 시큼하고 꼬질한 뒷맛을 남기는 막걸리보다도, 싸구려임에도 턱없이 비싸기만 한 양주보다도, 난 마신만큼 취하는 뒷맛도 알싸하니 개운한, 언제라도 손을 뻗을 수 있는 눈높이에 자리한 소주가 좋다. (중략) 살짝 허기가 드는 빈속에 차가운 녀석을 털어 넣으면 목구멍을 타고 식도를 지나 위 속으로 마치 하얀 눈 위에 더운 물줄기를 흘리듯 짜르르 자국을 남기며 타 내려가는 녀석이 주는 쾌감은 언제나 날 흥분하게 한다.’ (출처: blog.daum.net/pja0430/50)

즐겨 마시는 술은 사람의 성격과 체질을 반영한다. 나는 술을 늦게 배운 편인데다 거의‘아저씨’들과만 술을 마신 터라, 좋아하는 안주나 주종이 또래 언니들과는 사뭇 다르다. 풍기는 외모는 와인에 치즈 좀 씹을 것 같지만, 나는‘이슬’만 먹는 여자다. 소믈리에도 아니면서 10여 가지가 넘는 소주의 미묘한 맛 차이를 너무 일찍 깨달아 버린 것. 처음처럼은 달아서 금방 질리고, 좋은 데이는 닝닝하고, 한라 소주는 흙내가 난다(물론 전적으로 내 입맛 기준). 이슬이도 제조공장마다 약간씩 맛이 다르다. 어떤 날은 화학냄새가 확 올라오고, 어떤 때는 기분 좋게 달달하다. 후자인 경우는 좋은 사람하고 마시는 날이거나 술이 밥보다 고픈 날일 터.

이 화학냄새의 근원은 1963년 쌀을 술로 낭비하면 안 된다는‘양곡 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소주를 값싼 밀가루와 고구마 등에 화학물질인 아스파탐을 첨가해 제조하면서부터다. 제조사마다 맛이 다른 이유는, 값싼 사탕수수-타피오카로 95% 주정을 만들고 약간의 감미재와 물을 섞기 때문에 이 비율에 따라 맛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서두에 소개한‘명구’처럼 소주는 약간 빈속에, 목구멍으로 한 번에 털어 넣어야 제 맛이고, 개인적으로 맥주, 와인은 1잔이면 치사량이고, <술=소주>라는 공식에, 20도보다는 21도, 기왕이면 안동소주‘삘’의 독주를 9홉으로 따라, 잔 크기와 관계없이 한 번에 털어 넣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도 습관이라고 손목 각도가 늘 9홉에서 꺾여, 정이 너무 넘친다며 핀잔을 자주 받는다. 독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딱 마신만큼 취하게 하는 투명성, 작은 잔에“자 한잔해!”하며 주거니 받거니 정을 쌓아가는 재미, 술이 쓴 만큼 마음은 덜 쓰고, 매운 안주도 달달하게 느끼게 해주는 상대성 때문. 또한 소심하고 낯가리는 A형인 나를 세상에서 제일 소탈하고, 방글방글 잘 웃고, 목소리 큰 여자로 만들어주는 묘약이기 때문이다. 이런 좋은 게 있는 줄을 너무 늦게야 깨달았으니 태어나 처음 술을 입에 대 본 때는 24살 언저리였다. <싱싱한 간> 덕분에 지금도 변함없이 독주를 사랑하고 빨간 국물만 보면 입안에 소주향(?) 침이 고이는 파블로프 반사가 일어난다. 만약 내게“술 한 잔 하실래요?”라고 청을 받으시는 분이 계시다면, 웬만하면 거절하지 마시라. 초록병이 쌓일수록 새 피조물로 거듭나는 재미난 광경을 보실 수 있으실 것이다. 물론 농담이고, 다 아시다 피시 이 메시지는“친해지고 싶어요.”라는 쑥스러운 마음의 털털한 표현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슬>은 참 예쁜 단어다. <참이슬=진로> 각인효과가 무섭긴 무섭구나. 마지막으로, 이 글을 다 읽으신 분은 내게“주량이 얼마예요?”라고 질문을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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