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섭
위투어스 대표
esshin@ouitours.com

조금 쑥스러운 얘기지만 몇 해전 소물리에 자격증을 취득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투자해 얻은 것이었으나 직업으로 삼기보단 여행업에 접목해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바람이었다. 경험이나 실전 어느 쪽이나 많이 부족한 듯해 조심스레 주위에 털어놓았지만 그래도 입소문을 타고 조금은 알려졌던 모양이다. 그로 인해 와인에 관한 상담을 심심치 않게 받곤 하니 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무슨 와인이든 마시면 다 알아낼 수 있나요?”,“와인은 왜 그리 어려워?” “왜 프랑스 와인이 제일 비싸죠?”그때마다“와인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한다. 아주 가깝고 격의 없는 사이라면 조금 더 직설적으로 얘기해 준다.“와인은 구라(?)니까 자신에게 마시기 좋은 와인이 제일 좋은 와인이고 비싼 거 웬만하면 마시지 말아요”라고.‘구라’라는 비속어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이보다 더 실감나는 표현이 안 떠오르는 건 필자의 언어표현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와인처럼‘전설의 고향’같이 얽힌 이야기도 많고 우상숭배하듯 모셔가며 마시는 술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나폴레옹이 평소 즐겨 마시다 세인트헬레나 섬으로 유배된 후 연인 그리듯 했다는‘썅베르뗑’ 와인, 명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몽라셰’와인을 좋아해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와이너리에 전화를 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 이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프랑스가 세계에서 최초로 와인의 등급을 매기고 체계화해 품질을 다진 것이 오늘 날 고가 와인의 선두를 달리고 있는 이유이지만 스토리텔링이 있어 그 값에 부채질을 한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아니 소수의 마니아층을 빼면 다수는 이 스토리텔링에 넘어갔다고 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여행업계로 눈을 돌려 보자. 신문이나 TV를 통해 해외여행 광고를 접하는 많은 소비자들은 여행사 상품들을 어떻게 볼까? 여행업과는 다른 직종에 있는 지인들의 이야기로는 거의 모든 여행상품광고가 판에 박은 듯 하다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비로소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까닭에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행자들이 초보수준 이상의 여행경험을 갖고 있지 못한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UN에 가입된 모든 국가의 출입국 도장을 자신의 여권에 찍고야 말겠다는 야심(?) 찬 여행마니아 층도 또한 존재하고 이야기가 있는 테마여행을 찾는 이들도 아주 많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참신한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이런 잠재고객의 감수성을 한껏 자극하며 구매의욕을 끌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90년 대 후반 한 여행사의 광고에 이런 카피가 있었다.‘안델마트의 불고기집과 최고의 유럽여행’ 보는 순간 남모를 사연이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는 호기심과 낭만적인 느낌이 진하게 와 닿았고 실제로 시장에서 선풍을 일으킬 만큼 고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테마여행이나 이야기가 있는 여행은 무주공산인 것으로 보인다. 일부 여행사들이 성과를 거두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찻잔 속 태풍이다.

인류 최초로 와인을 담갔다는 그루지아(조지아)에서의 와인 시음, 슬로우푸드의 발상지인 이탈리아 브라에서의 체험과 지휘자 정명훈이 참여하는 베로나의 오페라축제, 리오넬 메시가 속한 바르셀로나 축구팀의 홈구장인 누캄프에서의 경기, 모든 게 스토리요 훌륭한 테마거리다. 고객의 욕구를 끌어내 그들을 만족시킨다는 건 마케팅 원리의 기본이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말도 있다. 더 많은 상품을 개발해 고객의 선택권을 풍성하게 하고 고가와 저가상품의 폭을 넓히며 다양한 테마를 소개해 박수와 성원을 받는 것이 생각하는 대로 사는 방법이리라. 우리에게 고객처럼 두렵고 고마운 존재는 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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