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영
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TourismFIJIKorea@gmail.com
 
내 책상은 늘 어지럽다. 신변잡기 소설, 잡지책들, 영수증, 낱장 서류들, 어학책, 때로는 논문자료 등 다양한 종이들이 여기저기 널려있어 정기적으로 갈아 엎어주지 않으면 책상은 이내 수북이 무언가로 뒤덮인다. 노트북, 데스크탑은 늘 켜있고, 핸드폰도 키보드에 연결을 해 놓고, 주말까지 이어지는 쉼 없는 일상과 빡빡한 스케줄을 무난히 소화하기 위해 짬짬이, 수시로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내 주변의 모든 기기들은 logged-in되어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잡기에도 눈을 뜨기 시작해, 미술, 음악, 글쓰기 등 또 다른 미지의 분야로 손을 뻗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그 지저분한 책상 위로 근사한 유화그림 한 점이 생뚱하게 놓여있고 드로잉 북, 지우개 가루도 함께 뒹구는 있는 중이다.

그러던 그제 서류뭉치를 정리하다 드디어 커피를 왕창 쏟았다. 못 박는 것이 귀찮아 책상 위에 아슬아슬하게 세워둔 그림이 넘어지면서 텀블러를 가득 채운 커피가 아이보리색 서류들을 갈색빛으로 물들였다. 보통 이런 경우라면 ‘어머! 어떻게 해!’하며 휴지든 수건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흐르는 커피줄기를 막아섰을 터인데, 이날 난 전혀 놀란 태도나 당황한 기색없이 서류를 보던 그 태도 그대로 커피를 닦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서류를 먼저 번쩍 집어올리고, 재출력이 가능하거나, 색이 좀 있어도 업무에 지장 없는 서류들은 조금 느릿하게 치웠다. 그리고는 마우스며, 모니터며 커피의 파편이 핥고 지나간 자리를 물 티슈로 천천히, 꼼꼼히 닦았다. 마치 원래 책상청소를 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처럼 유유히.

커피가 쏟아지는 순간, ‘인생도 이런 모습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보려고 쪼개고 쪼갠 시간과 공간 속을 비집고 바삐 겨우 잘 살아가는가 싶더니, 간혹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모든 노력을 한 순간에 공염불로 만드는 실패도 겪게 된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끼는 강아지가 병에 걸렸다고 길로 내몰지 않는다. 방 바닥에 우유를 엎었다고 바닥을 뜯어내거나 이사를 가지는 않는다. 책이 좀 젖었다고 읽을 수 없는 건 아니다. 아끼는 물건으로 수북한 책상이 갈색빛으로 뒤덮혔다 한들, 이 모든 것을 쓰레기통에 쳐 넣을 생각을 하진 않는다. 닦아보고, 말려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정리도 좀 해보고, 그림도 벽에 걸고, 커피도 안전한 곳에 놓도록 신경을 쓸 것이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정리를 하게 되고, 커피가 튄 자국을 닦으며 쌓인 먼지도 의도하지 않게 닦게 된다. 어찌보면 감사하게도 이 작은 실수를 통해 반 강제적인 정화와 정돈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책상은 한 결 깨끗해져 있다. 커피 자국이 곳곳에 눈에 들어오지만 썩으면 냄새나는 우유를 쏟은게 아닌 것만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물며 인생은 말해 무엇하랴. 인생에서 만나는 작은 실패, 실수를 그저 흉하게 내버려 두지 말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그리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것을 다듬고 개선해야 할지 교훈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함께 갖는다면 그 실패나 실수는 오히려 개선을 낳는 중요한 자극제가 된다. 그 문제 속에 고개를 쳐박고 뚫어져라 보며 한탄하고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 “또 이번엔 무엇을 배우게 될까?”하는 기대도 동시에 가져볼 일이다.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다.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면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뿐이다. 그러니 멀리보고 넓게 봐야 한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다. 문제는 늘 있게 마련이다. 다만, 문제를 통해 더 나아지면 된다. 그렇다면 실수도 실패도 없는 것이다. 인생의 총 합계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박지영 지사장은 업무와 공부, 육아 모두에 욕심 가득한 워킹맘이다. 전형적인 A형인 박 지사장이 일상에서 발견한 깨알같은 인생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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