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생활했거나 우리나라 사람들과 많이 만난 외국인들이 가장 당황스러운 혹은 이상한 경험으로 꼽는 것이 있다. 바로 처음 만나자 마자 대뜸 ‘나이가 몇 살이냐’, ‘결혼은 했느냐’를 묻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안 했다고 답하면 ‘왜 안했는지’까지 물어 더욱 당황스럽다고 한다. 

얼마 전 국내에 진출한 관광청의 한국 지사장으로 부임한 외국인도 공식 간담회에서 첫 질문이 다름 아닌 본인 나이에 관한 것이라 놀랐다고 한다. 나 역시 오래 몸담았던 외국 회사의 본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우리나라에서 늘 하던 대로 동료들에게 나이를 물었다가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라는 조언을 듣고는 무안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와 문화가 비슷하다고 생각되는 일본에서조차도 이런 나이 질문은 안한다는 사실도 새겨볼만하다.

호주를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는 회사 내에서 부하직원이나 동료들에게 결혼 여부, 종교 등의 사적인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 하고 있다. 아주 친해져서 사석에서 편하게 하는 경우라면 모르지만, 사무실에서 동료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해고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그게 뭐 해고까지 갈만한 것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사생활 보호가 중요한 그들 문화에서 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본인의 나이 또는 결혼 여부를 답변해야 하는 상황이 불합리하거나 부당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나이에 관한 질문을 우리는 왜 아무렇지도 하는 걸까?

우리는 어디를 가든 둘 이상 모이면 서로 나이를 확인하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우선은 상대 나이에 따라 존칭을 달리하고 존대어를 사용해야 하는 언어문화적인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이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서열을 세우며, 나아가서는 회사 내 팀워크와 효율성에까지 큰 영향을 준다.

우리에게 월드컵 4강 진출을 안겨주었던 히딩크 감독이 우리나라 대표 선수들의 선후배간 호칭과 존댓말 사용이 실제 경기에서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닫고 나이에 관계없이 전부 서로 이름만 부르도록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외국 조직에서 오래 일했던 내 경험으로는 히딩크의 이런 지시가 전체적인 조직력과 분위기를 향상하는 데 상당부분 기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외국인 동료나 상관들과 근무하는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 중 하나는 외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상사와의 거리감도 덜하고 오히려 편안하다고 하는 것이 우리나라처럼 나이를 따져가며 별도의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사장님, 전무님, 팀장님 등 직함을 꼭 붙여서 불러야 하는 번거로움 없이 그냥 이름만 부르면 되니 우선 심리적으로 편안하다. 그런 분위기는 업무로도 이어져 회의에서도 상관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데 부담감이나 두려움이 없어진다. 이건 외국어를 잘하고 못하는 문제가 아니다.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나이를 아는 순간 나도 모르게 상대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미리 갖게 된다. 그가 나보다 어린 경우 일단 경험과 지식이 나보다 한 수 아래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하며, 나이 많은 내가 더 잘 알고, 내 결정이 옳으니 따라야 한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싸움이 나면 상대에게 너 몇 살이냐고 묻는 경우는 이유야 관계없이 한 살이라도 더 어린 사람이 무조건 잘못이라는 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한 여행사의 신임 대표이사 소식이 관광업계에 화제가 되고 있다. 대표이사를 직원 선거로 뽑은 것도 이례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그가 30세도 안된 젊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 받았다. 그러나 아니나 다를까 아직 대표이사로서 뭔가를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그의 나이를 언급하며 연륜과 경험에 대한 우려를 공공연하게 한다.

아무쪼록 그가 대표이사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좋은 결과를 보여주기를 기대하며, 혹시라도 주변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그의 나이를 들먹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 논리라면 나이 든 사람들은 무조건 다 성공했어야 한다.
 
김연경 
프로맥파트너십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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