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는 꽃과 나무에만 있지 않다. 세상과 스스로에게 수없이 찔리면서 사람은 누구나 제 속에 자라나는 가시를 발견하게 된다. 2002년 월드컵에서 맹활약을 펼친 박지성은 당시 신문과 방송에 종횡무진 등장한다. 스물두 살의 그는 특유의 어리숙한 얼굴과 어눌한 말투로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는데 그의 진솔한 대답은 감동적이었다. “저는 축구를 잘할 수 있는 몸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축구는 하고 싶었습니다. 신체적으로 우월하지도 못하고 시골에서 뛰어나게 잘하지도 못하는 제가 주목받을 수 있으려면 남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열심히 연습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겨우 그들처럼 될 수 있었거든요.” 그에게 있어서 가시는 신체적인 열등감과 부족한 기량이었고 박지성은 바보스러울 정도로 우직한 훈련과 묵묵한 연습으로 극복한다.

로트렉이라는 프랑스 화가는 부유한 귀족의 아들이었지만 사고로 두 다리를 다친 후 다리 한 쪽이 좀 짧아졌다고 한다. 이를 비관한 그는 방탕한 생활 끝에 결국 창녀촌에서 불우한 생을 마감한다. 그러나 그런 절망 속에서 그린 그림들은 아직까지 남아서 전해진다. “내 다리 한 쪽이 짧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 적이 있다. 로트렉에게 가시는 바로 남들보다 짧은 한쪽 다리였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오래 고통받아온 것이 오히려 존재를 들어 올리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가시 자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어차피 뺄 수 없는 삶의 가시라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것마저 없었다면 우리는 인생의 소중함과 고통의 깊이를 채 알기도 전에 얼마나 웃자라 버렸을 것인가.
 
2014년 갑오년을 맞아 내 안의 가시는 진정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시를 어떻게 끌어안아 오히려 내 존재를 들어 올릴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아울러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내 이웃도 행복하게 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오래 전 어느 신부님이 주일미사 때 가르쳐주신 인상적인 기도문을 다시 한 번 읽어보고 음미해봐야겠다. 처음 이 기도문을 읽었을 때는 허리를 꺾고 웃었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점점 웃어지지 않았다. 해학이 넘치면서도 철학적이기까지 하여 마음을 새롭게 다잡을 때마다 꺼내보고 있다. 

똥 누며 드리는 기도

하느님,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당신께 감사를 드립니다. 밥상에 앉아 생명의 밥이신 주님을 제 안에 모시며,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처럼, 오늘 이 아침에 뒷간에 홀로 앉아 똥을 눌 때에도 기도하게 하소서. 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제 뒷구멍으로 나오는 것이오니, 오늘 제가 눈 똥을 보고 어제 제가 먹은 것을 반성하게 하시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지는 않았는지, 일용할 양식 이외에 불필요한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이기와 탐욕에 물든 것을 먹지는 않았는지, 오늘 제가 눈 똥을 보고 어제 제가 먹은 것을 묵상하게 하소서.

어제 사랑을 먹고 이슬을 마시고 풀잎 하나 씹어 먹었으면, 오늘 제 똥은 솜털구름에서 미끄러지듯 술술 내려오고, 어제 욕망을 먹고 이기를 마시고 남의 살을 씹어 먹었으면 오늘 제 똥은 아무리 힘을 주고 문고리를 잡고 밀어내어도, 똥이 똥구멍에 꽉 막혀 내려오질 않습니다.
 
중략
 
오늘 똥을 누지 않으면 내일 하느님을 만날 수 없음에, 오늘 나는 온 힘을 다해 이슬방울을 떨구며, 온 정성을 다해 어제 제 입으로 들어간 것들을 반성하며 똥을 눕니다. 오늘 제가 눈 똥이 잘 썩어 내일의 양식이 되게 하시고, 오늘 제가 눈 똥이 허튼 곳에 뿌려져 대지를 오염시키고 물을 더럽히지 않게 하소서.
하느님, 오늘 제가 눈 똥이 굵고 노랗고 길면, 어제 내가 하느님 뜻대로 잘 살았구나!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오늘도 그렇게 살아야지, 감사하며 뒷간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오게 하소서. 아멘!
 
 
강문숙 맥스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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