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사각 책장 넘기는 소리, 창으로 비춰드는 다사로운 햇살, 저마다의 책갈피로 빠져드는 사람들의 숨죽인 탐닉. 도서관은 언제나 책 이상의 그 무엇으로 우리들을 매료시키곤 한다. 단순히 ‘도서와 정보를 수집·보관·분류·열람’하는 장소가 아니라, 때로는 이야기를 건네고 자연과 풍경을 품어내기도 하는 공간들. 다른 선진국에 비한다면 아직 부족하지만, 서울 곳곳에도 적잖은 도서관들이 있다. 공공도서관만 120곳에 이르고, 작은 도서관들까지 아우르면 900곳이 넘는다. 서울의 도서관은 이제 그 자체로 한 권의 책이 되어 독자들을 기다린다. 그곳으로 향하는 발길이 ‘여행’이 될 수 있는 이유다. 

글·사진=Travie writer 서동철 
 
 
신년기획 책 권하는 2014년
PART 2  도서관 여행
책, 그 너머를 ‘여행’하다

theme1 자연을 품은 도서관
 
참 작은 도서관들이다. 그러나 무시하지 마시라. 숲과 공원에 단출하게 자리한 이 도서관들은 공간적 개념을 확장해 주변의 자연을 품어낸다. 도서관 ‘안’뿐 아니라, ‘밖’까지도 도서관의 일부로 삼는 것이다. 작지만 ‘큰’ 도서관으로의 산책.
 
 
▶관악산숲속작은도서관
여기가 산장이야? 도서관이야?

서울대학교 정문 옆으로 난 산길을 걷는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기는 했지만 관악산(632m)의 정취마저 어쩌진 못했다. 길가 좌우로 나무들은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있었고, 가끔씩 산새의 지저귐이 귓전을 스쳤다. 그런데 조금씩 불안해진다. 색색의 등산복을 갖춰 입은 이들만 길을 오갈 뿐이어서, 이 산길 어딘가에 도서관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15분쯤 걸었을까. 관악산 제1광장 오른편으로 작은 나무집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숲속작은도서관’이라는 간판이 없었다면, 여느 산자락의 산장이나 대피소쯤으로 여기고 지나칠 뻔했을 정도로 소박하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 2008년 10월 관악구에서 버려진 녹지관리초소를 개조해 만든 것이란다. 너비도 앞뜰을 포함해야 겨우 80㎡ 정도다. 하지만 그래서 아름답다. 나무데크로 짜 만든 앞뜰, 그 앞을 흘러가는 작은 개울, 등산로와 도서관을 연결하는 나무다리 등은 주위를 둘러싼 숲과 어우러지면서 그윽한 풍경을 엮어낸다. 얇고 넓은 나무 조각으로 이은 너와지붕은 강원도의 산골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정겹다.

안으로 들어서니 한 10m2 정도의 온돌방이다. 아이들을 위한 것인 듯 낮은 책장이 벽면을 두르고 있고, 가운데에는 연두색으로 칠한 앉은뱅이책상이 놓여 있다. 사방으로 뚫린 창으로는 관악산의 우거진 숲이 액자처럼 걸린다.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약 3,000권, 주로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환경·생태와 관련된 책들이다. 

‘관악산 숲 가꾸미’라는 단체에서는 다양한 생태 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진행한다. 솔방울, 씨앗 등 숲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여러 공예품을 만들기도 하고, 따뜻한 계절엔 앞뜰에서 동화를 읽어 주기도 한다. 어린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찾아오기에 딱 좋은 곳이다. 추운 겨울에는 잠시 도서관이 쉰다니 아쉬울 뿐.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
휴관일 매주 화요일(3월20일~11월30일까지 운영)
주소 관악구 대학동 산50-2 관악산 제1광장 부근
문의 070-4118-6154
 
 
숲속작은도서관(서울숲)
서울숲 전체가 모두 도서관!

뚝섬의 서울숲을 거닐다 보면 가슴이 탁 트인다. 빌딩숲으로 빽빽한 서울에서 이렇게 널찍한 녹지를 만나기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총 공사비가 약 2,500억원, 전체 면적은 35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104종 24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5개의 테마로 구분해 환경·생태와 관련한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2005년 서울숲이 문을 열었고, 그로부터 정확히 1년 후 공원 안에 자리한 방문자센터 한 쪽에 숲속작은도서관이 들어섰다. ‘서울숲에서는 책을 읽어요~’라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도서관 만들기까지 이어진 것이다. 숲속작은도서관은 꽤 작았다. 일부러 알고 찾아가지 않는다면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다.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피어나는 것 같은 벽지와 천장 인테리어는 인상적이지만, 다른 숲속도서관들처럼 통유리로 꾸며져 있지 않고 천장도 낮은 편이어서 좁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공원과 숲 등 자연으로의 공간 확장은 서울숲의 숲속작은도서관이 가장 적극적이다. 이곳에서 책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도서관 안에서 보기와 회원으로 등록하고 대출하기는 물론, 신분증만 맡기면 서울숲을 거닐다가 맘에 드는 곳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빌린 책은 도서관이 문을 닫기 전까지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 

공원에서 책을 보고 싶은데 신분증이 없다면 ‘책수레’를 이용할 수 있다. 작은 책장이 담긴 책수레는 숲속작은도서관이 ‘작지만 가장 큰 도서관’을 꾸려나가는 독특한 도서 대여 방식이다. 책수레는 ‘무인 도서 대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보통 사색의 길이라 불리는 메타세콰이어 길 초입에 놓이는데, 책을 보고 싶으면 대출 대장에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공원에서 자유롭게 읽은 후, 제자리에 가져다 놓거나 도서관 앞의 반납함에 넣으면 된다. 책수레라는 작은 아이디어를 통해 도서관의 공간을 35만 평방미터로 한껏 확장시키다니! 놀랍지 아니한가?

이용시간 오전 10시30분~오후 5시30분, 동절기(12~2월)는 오후 5시까지  휴관일 매주 월요일, 동절기(12~3월)에는 책수레 운영 중지
주소 성동구 뚝섬로 273(방문자센터)
문의 서울숲사랑모임 02-462-0296 www.seoulforest.or.kr
 

▶삼청공원숲속도서관
숲과 공원을 끌어안은 북카페

그윽한 커피 향이 흘러나오는 카페를 비롯해 레스토랑, 갤러리, 공방, 박물관 등이 즐비하다. 언제 걸어도 좋을 삼청동 카페골목이다. 이 골목의 끝자락에 다다르면 어느새 인적이 드문드문해지고 숲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철마다 새싹이 나고,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길 반복하면서 시간이 만들어낸 부엽토 냄새다. 촉촉하면서도 진득하고, 싱그러우면서도 깊은 그 냄새. 어지간한 커피 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삼청공원이 가까워 온 것이다. 

삼청공원은 북악산(342m) 남동쪽 기슭의 수백년 묵은 소나무 숲에 폭 파묻혀 있다. 서울의 도심이 버스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고즈넉한 숲길은 시민들의 발길을 산책으로 이끌고, 아이들을 위한 작은 놀이터와 시원하게 목을 축여 주는 약수터가 반갑다. 삼청터널이 뚫리면서 공원 면적이 줄어들긴 했지만, 삼청동 카페골목을 찾아온 이들의 마지막 코스로 손색이 없다. 

공원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삼청공원숲속도서관은 자리하고 있다. 종로구청이 ‘작은도서관’ 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13번째 도서관이다. 음료나 간단한 요깃거리를 팔던 매점을 철거하고, 2013년 10월5일 생태도서관을 콘셉트로 삼은 숲속도서관이 문을 연 것. 안으로 들어서면 생각보다 넓고 환한 느낌에 놀라게 된다. 널찍한 통유리로 시원하게 숲의 경치를 끌어들이고, 칸막이 등 공간의 구분을 없앤 것이 특징이다. 높다란 천장에도 창문이 있다. 어슷하게 낸 두 개의 지붕 사이로도 창을 내어 빛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건물의 생김새나 구조가 유다르다 싶었더니, ‘2012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이소진 건축가의 ‘작품’이었다. 숲속도서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친환경적인 나무를 사용해 도서관 안에서도 숲 향기가 나는 것만 같다. 온돌 구조로 공간을 내어 아이들이 자기 집 방에서 뒹굴면서 책을 보는 듯한 느낌도 살렸다. 심지어 창문턱을 넓게 만들어 창가에 앉아 책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물론 여기에도 온돌이 깔려 있다. 지하1층도 마찬가지. 건물의 위치상 지하라고는 하지만 역시 넓은 통유리 창이 있고, 나무데크로 된 테라스까지 갖춰져 있다. 도서관 한가운데의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핫초코, 유자차, 허브차 등의 음료와 간단한 빵을 판다. 가격도 2,000~3,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닥종이 공예, 헝겊인형 만들기, 복주머니 만들기 등 삼청동과 북촌의 인적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실시한다. 어린이 생태도서관을 지향하는 만큼, 다가오는 봄부터는 삼청공원의 자연 속에서 나무 타기, 풀과 벌레 관찰 등의 체험도 마련할 예정이다. 

이용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일 매월 둘째·넷째 화요일 및 법정 공휴일(일요일 제외)
주소 종로구 북촌로 134-3  문의 02-734-3900
 

 
●mini interview ┃삼청공원숲속도서관 정정아 대표이사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도서관”

관장님이 어느 분이세요? 라고 물었더니 관장님은 없고 정정아 대표이사님을 만나 보란다. 도서관에 관장이 없다니 무슨 연유일까? 삼청공원숲속도서관은 종로구에서 세운 것이지만, 운영 주체는 ‘북촌인심협동조합’이다. 북촌 지역에 거주하는 학부모들이 결성한 단체다. 조합의 대표이사가 곧 관장인 셈이다. 

“이곳에서 지역 주민들의 소소한 전시회나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도 좋겠죠. 2014년 공원에 생태체험학습장이 마련되면 그것과 연계해서 숲속유치원 프로그램도 실시할 예정이에요. 삼청공원숲속도서관이 북촌 지역민들과 서울 시민들의 따뜻한 쉼터, 만남의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게 저희들의 작은 바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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