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장수 마을로 손꼽히는 일본의 가고시마는 쌀누룩, 찐 쌀, 지하수를 옹기에 담아 100퍼센트 천연 발효시킨 전통식초 하나로 수만명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관광지다. ‘동양의 나폴리’로 통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으로 연중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지만, 현미 흑초 양조장을 가보지 않고서는 가고시마 관광에 대해 논할 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식초는 중요한 관광 자원이 됐다. 200여년 전 이 지역의 한 장인이 항아리를 이용한 흑초 제조법을 개발한 이후 지금까지 가고시마현의 건강장수비결이 바로 흑초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광객들이 부쩍 늘었다.
 
특히 사쿠라지마를 배경으로 5만여 개의 옹기가 가지런히 놓여 있어 장관을 연출하는 이 지역 제일의 식초회사 ‘사카모토 양조장’은 가고시마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명소다. 인근의 또 다른 양조장 ‘가쿠이다’에서는 흑초로 맛을 낸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기도 한다.

가고시마를 방문한 관광객은 물론 현지 팸투어를 다녀온 여행업계 및 기자단 가운데 이 양조장에 가서 현장을 둘러보고 몇 병의 식초를 사오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고시마의 흑초는 웰빙 바람을 타고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전통방식으로 발효시키는 슬로우푸드인데다가 생산량이 한정돼 있어 판매 단가도 꽤 높은 편이지만 아무리 비싸도 관광객들의 ‘흑초사랑’은 시들지 않는다. 식초하나로 수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들여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우리나라에서는 술꾼이라면 꼭 들리는 도시가 있다. 전북 전주시다. 삼천동과 서신동, 경원동, 평화동 등에는 IMF를 기점으로 부활한 서민의 술, ‘막걸리’ 전문업소가 100여개 몰려 있다. 막걸리촌으로 유명한 이곳에서는 만원짜리 한 장만 들고 가면 10여가지 안주에 막걸리를 거나하게 마실 수 있다. 값 싸고 맛이 좋다는 소문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이제는 술꾼만이 아닌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막걸리 관광이 국내외 대표적인 관광코스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막걸리 골목의 상태는 열악했다. 이에 전주시는 지난 2011년부터 지역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막걸리 상징물과 주막 등을 설치하는 등 삼천동 막걸리 골목 경관개선사업을 추진했다. 2년간 진행된 이 사업으로 다소 조악해 보이던 삼천동 술집골목은 정취가 느껴지는 막걸리 골목으로 탈바꿈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환경개선과 함께 막걸리의 진화가 계속됐다. ‘전북대학교 막걸리 연구센터’에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막걸리 관련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있다. 매년 새롭고 맛있는 막걸리가 발굴되고 막걸리와 잘 어울리는 안주 개발도 활발하다. 막걸리 지도와 만화 등 홍보물 제작은 물론 모바일 앱 ‘전주 막걸리 이야기’, 막걸리를 발효하고 남은 누룩으로 만든 빵과 쿠키 등도 등장했다.

이제 막걸리는 관광객들을 전주시로 불러들여 상권을 부활시키는 효자 관광상품이 됐다. 막걸리를 향한 민·관· 학· 연의 의지와 노력이 점차 관광수익으로 그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도 수십년 째 식초만 연구하고 있는 식초의 대가들이 있다. 경북 영천에 가면 20년째 식초연구에만 매진해 온 ‘생초록농원’이 있는데 이 농원의 현경태 대표는 수년 전 지상파 방송을 통해 마늘 흑초의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최근 식초가 칼슘 흡수를 돕는다는 연구결과에서 착안해 1200도의 고온에서 소성시켜 만든 고운 칼슘 분말을 3년간 발효시킨 현미흑초에 녹여 새로운 성분의 칼슘흑초를 개발했다. 모 대기업에서 일찌감치 눈독을 들여 판매 계약을 마치고 본격적인 홍보 및 마케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영천시 관광과에서도 관심을 갖고 농원의 식초생산과정을 관광코스로 개발해 지역 특산품으로 상품화 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한다.

이렇듯 지역의 특산품 하나만 잘 개발하면 관광의 핵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지형적인 특성상 지역특산품 하나로 그 고장을 먹여 살릴 정도로 발전 가능한 소재들이 참으로 다양하다. 다만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에 따라 가고시마의 흑초가 될 수 있고 단순 민간요법이나 향토음식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전주시나 영천시처럼 향토기업과 함께 지역경제를 살리고 관광 상품으로 발전시키려는 노력들이 점차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지역의 특산품을 만드는 향토기업과 지방자치단체, 대학이나 연구소 등이 상생협력으로 힘을 모으면 가고시마 식초를 능가하는 세계적인 특산품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관광한국의 힘은 대한민국 곳곳에 숨겨진 장인들의 솜씨와 지역 특산품의 발전과 함께 더욱 커질 것이다.
 
나은경 
㈜나스커뮤니케이션 대표이사 
eknan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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