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다이어트’를 입에 달고 다닌다. 언니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11자 복근’과 FIJI 가면 입을 거라며 미친 척하고 사 놓은 그 놈의 비키니 수영복 두 벌 때문이다. 그러나 11자 복근은 커녕, 아직 ( ) 모양 허리의 중간 즈음 단계니 갈길이 멀어도 너무 멀다. 그래도 ‘만들고 말리라, 11자 복근’을 되새기고 있지만 희한하게도 먹는 순간만큼은 영혼이 잠시 빠졌다 들어오는지 음식물이 치아와 타액에 충분히 분해돼 식도를 타고 내려갈 때야 또 일을 저질렀음을 깨닿곤 한다.

삼시세끼는 목숨처럼 챙겨먹고, 새벽 라면도 이틀에 한 번 꼴로 거의 거르지 않는다. 술 없이 먹는 것 자체가 고문인 음식이 나오면 점심, 저녁가리지 않고 규칙적으로 반주도 해주고, 당 떨어질까 봐 초콜릿을 늘 가방이나 책상에 지참하고 다닌다. 스트레스 받으면 파블로프의 반사처럼 카페모카가 떠오르고, 양심 상 생크림은 조금만 넣어달라 한다. ‘지영아, 다이어트란 건 대체 뭘까’ 스스로에게 수 없이 질문을 던지지만, 역시 먹을 것이 입에 들어가는 순간 경험하는 ‘유체이탈’은 신비로울 새도 없이 무척이나 자주 벌어지는 초자연적 현상이다.

내가 왜 이런 막나가는 삶을 살게 됐는지 되짚어 보았다. 나, 사실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가슴 아픈 과거를 가진 여자다. 나의 살과의 전쟁은 말 그대로 눈물겹다. 산모수첩에 적힌 신생아 때 기록 외에, 내 몸무게의 대서사시는 역모 한 번 없이 50kg 이상, 70kg 이하에서 규칙적으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내 살의 '절정'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는 시기, 대단원의 ‘클라이막스’는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이 때마나 새로 태어나 보겠다는 결심으로 운동에 매진했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예전에는 ‘체력장’이라는 게 있었다. 의도는 기초체력을 평가한다는 건데, 그들이 말하는 기초체력이란 뚱보에게는 괴로운 한계와의 도전을 의미한다. 중3 여름방학 즈음 체력장 준비를 위해 엄마에게 질질 끌려가 헬스클럽을 처음으로 등록했는데, 아뿔싸, 근육질 트레이너에게 한 눈에 반해버리고 말았다. 학생 입장에서 선생님을 좋아하는 것은 큰 예외없이 긍정적인 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그건 ‘공부’와 관련된 선생님일 때로 한정 지어야 마땅하겠다.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않고 전투적으로 임했다. 꼬리뼈가 까질 정도로 윗몸 일으키기를 했고, 특히 앉아서 할 수 있는 근력 운동에 매진했다. 이는 트레이너의 구리빛 울룩불룩 몸매를 관음증 환자처럼 감상하기 위해서였는데, 가장 이상적인 자세는 사두근(허벅지 앞쪽) 발달에 좋은 벤치프레스였다. 그래서, 살은 좀 빠졌을까? 체력장은? 지금 이 대목에서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서글픈 뚱보 중딩의 짝사랑은 심각한 부작용을 남기고 말았다. 뻥 뚫린 마음과 상실감은 이별의 보편적 결과물이니 차치하고, 이상화 선수의 허벅지와 장미란 선수의 팔을 영광스럽게 얻게 된 것이다. 이때 얻은 근육 메달은 이후 아무리 살을 빼도 사이즈를 달리할 줄 몰랐다. 물론, 아니 빼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이제는 갸냘프고 야리야리한 몸매는 아무리 굶어봤자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작은 키와 절벽 가슴같은 유전이거나 혹은 장애에 가까운 거라 생각하며 확실히 단념하고 건강하고 박력있게 사는데 집중하고 있다. 진짜 살아보니 여자가 너무 가늘어도 못쓴다. 애 낳고 기르는데도 체력이 딸리면 좋지 않다. 그나저나, 기왕 이럴 줄 알았으면 쇼트트랙이라도 배워 볼 걸 진로를 잘못 택한 것 같다. 
 
*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www.facebook.com/fijiassi
박지영 지사장은 업무와 공부, 육아 모두에 욕심 가득한 워킹맘이다.
전형적인 A형인 박 지사장이 일상에서 발견한 깨알같은 인생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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