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란 직업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경제적인 안정을 누릴수 있고 선망의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에게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직업이기에 택했던 것일까? 의대를 졸업하고 25년 가까이 의사로서 일해 오며 겪었던 많은 애환들을 오십줄에 접어든 요즘 더욱 자주 생각해 보게 된다.
얼마전 3일간을 집과 병원을 떠나 동경에서 개최된 학회에 와 조용한 호텔방에서 혼자 이일 저일 생각해 보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텔레비젼을 켜니 마침 일본 프로야구경기가 방영되고 있는데 선동열선수가 나오지 않는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야구가 끝나니 또 정적이 오며 지난날의 환자들 생각이 머리를 메운다. 외래에서 MRI가 뭐냐, CT가 무어냐,
약값은 얼마냐, 다른 사람은 허리가 나았는데 나는 왜 안 낫느냐는 등 이런저런 환자분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고맙다고 감사해하는 환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이런저런 약의 남용으로 인해 혹은 다른 곳에서 주워 들은 지식으로 인해 고생을 사서 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인술의 한계에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환자를 잘 낫게 하는 명의가 되려면 근본적으로 환자를 잘 만나야 하고 그 환자가 의사를 굳게 믿고 의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온 내 일생이다. 2주일전에 한 환자분, 70세 가까운 할머니인데 심근경색이 있어서 관상동맥수술을 다른 병원에서 하고 곧바로 올테니 부디 잘 치료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래서 수술 잘 받고 오시라고 했었는데 그만 심장수술후 이틀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참으로 허무했다. 우리는 누구나 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살아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닐까.
어떤 책엔가에서 읽었던 문구가 문득 떠오른다. 인간은 자신을 실현한 후에 자신을 초월하여 사회에 공헌하고 유산을 남겨서 삶의 질과 수준을 높여야 생의 참 맛을 안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신을 실현한다는 뜻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뜻이고, 자신을 초월한다는 말은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승화시킨다는 말인데, 현실적으로는 걸핏하면 짜증나
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닌데 이런 주위 환경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하며 좌절감을 느낀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나는 후배의사들에게 항상 환자에게는 친절하고 겸손하며 양보하라고 충고한다. 환자들은 병원에 오는 일부터가 고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므로 그러한 환자들과 맞서서 언성을 높인다는 것은 의사로서의 사명감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아주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지면 어이가 없을 때도 있다.
예를 들면 자신이 진찰받을 때 느닷없이 며느리나 사위를 데리고 와 예약도 없이 자기가 진찰하는 김에 같이 봐 달라고 하여 거절하면 무조건 섭섭해하는 분들이 있다. 왜 이런 도덕적 문화에 있어서의 개선은 힘든 것일까? 혼자 자탄해보며 여러 면에서 선진으로서의 위상이 있었으면 한다. 사회전반적인 도덕성이 자꾸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고 어쩌면 이런 일들이 매스컴의 정치얘기와도 관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된다. 이런 한가로운 상념을 가져본 것도 여행덕인 듯 싶다.〈한양대구리병원 재활의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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