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 주제로 연재물을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까지 상상은 확장돼가고 소재를 찾던 내 기억은 1993년의 한 사건으로 향한다. 그 해 11월에 결혼을 했다. 결혼 날짜를 받아놓고 9월에 출장을 갔다. 유럽의 작은 도시를 여행하는 보름 정도의 꽤 긴 여행이었다. 풍경 좋고, 식사 좋고, 숙소가 좋다해도 긴 여행에는 늘 피곤한 일들이 생기는 법이다. 그럴 때마다 동분서주 하는 나를 편안한 위로와 따뜻한 눈길로 감싸준 중년 여성이 한 분 계셨는데, 그 분은 한국에서 가지고 왔다는 밑반찬도 인솔자에게 챙겨주고, 아침인사를 건내면 가장 밝은 목소리로 대답을 해주고는 했다.
인스부르크의 어느 공원을 여유롭게 산책하는 일정 중에 손님들이 갑자기 인솔자가 총각인지를 궁금해 했고, 나는 지나가는 말로 두 달 후에 결혼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이런 저런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연애는 얼마나 했느냐, 결혼식은 언제 하느냐, 예식장은 어디냐 등등. 그리고 나에게 늘 잘 해주던 그 분도 신부 직업이 뭔지를 물었다. 보건소에 근무한다고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도 이상해서 그냥 의료 쪽 일을 한다고 했더니, 그 분이 “의사세요?” 라고 되물었고 나는 그냥 네, 네 하며 그 자리를 정리해버렸다. 아내 될 사람의 직업을 과장하기 위한 허세보다는 인솔자 중심의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식. 주례 선생님이 신랑 신부의 직업 소개를 한 후에 주례사를 진행했고 하객 인사를 위해 뒤돌아섰을 때 입구 쪽에 서있는 그분을 보았다. 두 달 전에 했던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오신다는 말씀도 없이 서울 외곽의 예식장까지 찾아오신 것이다. 그 순간 나는 감사의 마음보다 본의 아니게 아내의 직업을 속인 그 사실이 후다닥 생각나서 당황감에 눈인사조차 제대로 못했다. 무의식적인 나의 외면 탓이었을까? 예식이 끝나고 식당으로 인사를 다닐 때도 그 분을 찾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인생을 능글스럽게 대처할 수 있었다면 나중에라도 전화를 드려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하객에의 예우를 챙겼을텐데, 도둑질하다 걸린 아이처럼 당시의 나는 그런 주변머리조차 보이지 못했다.
가끔 그 기억과, 뒤돌아섰을 때 사람들 속에 서있던 그 분의 모습과, 당황했던 나를 생각하노라면 미안함과 창피함과 회피하고 싶은 마음 등이 뒤죽박죽 머리를 채운다. 그 분이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고 편안하실 것을 바라면서 ‘결혼식에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는 말씀을 지면을 통해서라도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이다.
윤용인
노매드 미디어&트래블 대표이사
www.nomad21.com
twitter.com/ddub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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