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 않은 호텔근무를 접고 근무했던 호텔을 떠나올 때 호텔에 진심으로 감사했던 일이 하나있다. 대형안전사고라는 악재를 경험하지 않고 호텔 근무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훌륭한 호텔이었다. 30년 전 설계된 호텔이지만 지금의 새로운 시설과 비교해도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고도의 안전 시설들이 호텔 곳곳에 장치돼 있었다. 화재 시 복도를 삼등분 할 수 있는 자동 방화문은 고객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각 층에 설치돼 있고 잘 설계된 넓은 비상통로와 그 밖의 모든 것들이 중앙관제 시스템에 의해 관리 되었다. 우수한 안전관리과의 전문인력이 호텔 직원들을 정기적으로 교육시켰으며 발생될 다양한 사고에 대한 대비책을 준비하려 노력했다. 30년전 그 호텔을 설계하고 건축한 외국의 담당자들이 여전히 서울의 그 호텔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는 호텔 관계자의 말을 듣고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우리 호텔업계에 세계1위를 한 불명예 항목이 하나 있다. 단위호텔로서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사고로 기록된 1971년의 대연각 호텔 화재다. 1층 커피숍의 프로판가스가 새어 나와 발생한 화재는 삽시간에 호텔의 상층부를 향해 번져 갔다. 크리스마스 휴일의 여유를 즐기던 약 200여명의 고객들과 70여명의 직원들 중 163명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을 입었다. 총체적 부실의 대표사례로 지목되는 대연각 호텔의 속살은 참으로 비참했다. 불연성 외장재로 지어졌으나 정작 호텔 안쪽은 온통 가연성 내장재로 채워져 있었다. 1층의 불은 삽시간에 객실의 내부를 관통하는 샤프트와 덕트를 통해 유동성 연기와 함께 호텔 전체에 번져갔다. 소방경보는 주변 소방서와 연동돼 있지 않았고 비상계단은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으로 불길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최상층 옥상문은 잠겨 있어 어렵게 옥상까지 올라간 투숙객들은 옥상문 안쪽에서 질식사 했다. 

그야말로 눈 깜짝 할 사이에 벌어진 대형 화재 참사에서 인상적이자 유일한 내부 구조사례 하나가 미국방화협회(NFDA) 대연각 화재 분석 리포트에 소개돼 있다. 그 사례는 다름 아닌 호텔의 직원에 의한 피난유도 사례였다. 7층에서 근무하던 직원은 화재를 감지하고 7층 투숙객들의 방을 일일이 두들기고 투숙객들을 깨우며 소리쳤다. “불이 났습니다. 어서 대피 하십시오” 호텔 직원은 투숙객들을 8층으로 안내해 호텔 뒤쪽의 사다리를 타고 아래 7층의 옥상으로 대피시켰다. 이렇게 이 직원이 안내한 루트를 통해 살아난 대피자는 50명에 달한다. 호텔 구조에 익숙한 직원의 빠른 판단과 대처가 아니었다면 50명의 대피자는 사상자 명단으로 바뀌어 있었을 것이다. 

호텔 내 안전사고에 대한 대처 매뉴얼은 반드시 갖춰야 할 기본이지만 그 매뉴얼조차 만들지 않은 호텔이 틀림없이 존재한다. 매뉴얼이 있더라도 그 매뉴얼을 숙지하고 성의껏 훈련하는 호텔은 많지 않다. 대연각 호텔 화재 분석 리포트에 이름조차 확인되지 않는 그 호텔직원 사례처럼 어떤 위급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내부의 직원이다. 

안전사고 매뉴얼은 여전히 일부의 손에서 두꺼운 책의 분량으로 만들어지고 교육이라는 형태로 위에서 아래로 전달된다. 수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 효과 없는 피곤한 형태의 사고대비책은 이어지고 있다. 안전사고의 매뉴얼은 직원들의 동참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모두가 모여 자유롭게 둘러앉아 진지하게 의견을 내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 결론 낸 고객보호 세부 방안들이 바로 매뉴얼이어야 한다. 

최근 우리의 호텔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급격한 신규호텔의 숫자가 그러하고 경영이라는 이유로 당연시 되어버린 비정규직, 아웃소싱, 저임금 등과 같은 단어에 무감각해 진 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것이다. 이 변화의 흐름에 많은 호텔들이 뚝딱뚝딱 건물을 고쳐 호텔 간판을 새로 달고 있지만 혹시 그 급격한 수적 성장이 대형사고의 밑그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늘 자리한다. 우리의 호텔들은 목숨을 걸고 투숙객의 객실을 두드리며 “어서 대피하십시오” 라는 한마디를 소리칠 호텔직원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걸까? 

내 아이와 같은 나이의 아이들 270명이 진도 앞바다에서 못난 어른들을 믿고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지금 이 시간, 이 야만의 시대에 세월호를 보며 고작 생각해냈다는 게 이번 칼럼 이라는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고 죄스럽다. 정말 미안하다. 잘못했다. 우릴 용서하지 말아다오.
 
유경동
유가기획 대표
kdyoo@yoog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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