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간절한 바람, ‘살아있기만…’ 이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다. 고등학교 때 난 무척 나쁜 학생이었다. 그 때 지금처럼 왕따, 일진이 있었으면 무슨 사고라도 쳤을 듯하다. 고3, 7월에 가출을 했다. 석 달 동안 다리 뻗고 눕기도 비좁은 20만원 짜리 싸구려 고시원을 전전하며 살았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탈모도 심각했다. 머리를 넘기면 손바닥에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엉켜 힘없이 떨어졌다. 당시는 삐삐가 있던 때라, 공중전화를 붙들고 새벽까지 누구와 수다라도 떨며 허탈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자주 자살을 생각했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궁리하다 잠들곤 했다. 또 어떤 때는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지내는 날이 일주일에 6일은 됐다. 지금은 우울증이란 말을 쉽게 쓰지만, 마음이 아프다는 자각조차 하기 힘든 때였다.
다행히 당시 나는 나쁜 짓을 하려고 가출을 한 건 아니었다. 어떤 사정 때문에 아버지 동의 하에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공부를 하며 지냈다. 자살 생각을 한 건 사실이지만 워낙 겁이 많고 약 같은 건 살 돈도, 방법도 몰라 시도조차 해보질 못했다. 교실 외에 있을 곳은 좁디 좁은 방 한 칸 뿐이고, 옆 방에 피해가 갈까 뭘 먹기도 어려운 긴장된 분위기에, 씻는 것도 옥상에 있는 공동 욕실을 써야해서 늘 불편하고 무서운 상황의 연속이었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그냥 엉덩이만 붙이고 앉아있었던 참 헛헛한 시간들이었다. ‘방황’이라는 단어가 너무 가볍게 들릴 만큼 정서의 부침이 참으로 컸던 그러나 여전히 참 좋은 나이 열여덟의 난, 일단 대학에는 가야겠고, 그 때까지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모든 것이 이 또한 지나가기 만을 바랬던 기억이 아련하다.
신은 우산을 주신 후에 비를 내리시고, 감당할 수 없는 시련은 주시지 않는다고 한다. 살다보면 어쩔 수 없는 억울한 상황들이 있다. 마음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싶을 만큼 힘든 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대단한 것을 바랄 필요가 없다. 그냥 ‘살아있기만’하면 된다. 그렇게 웅크리고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 보면, 지나고 하는 이야기지만 생각보다는 괜찮았다는 걸 알게 된다.
앞으로 또 살아있기만 해도 좋은 시간을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꼭 기억하려고 한다. 살아있고 싶었지만, 정말 살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던 아이들이 저렇게 많았단 걸. 나 역시 그 지독한 암흑기를 일단은 버티고 나니 이렇게 애도 낳고 자살은 커녕 전력질주하며 세상을 살 의욕에 불타는 사람이 되었는데, 그 맛조차 보지 못한 아이들이 그렇게 많았단 걸 말이다. 그저 살아있기만 한 것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잘 가렴. 꼭 좋은 곳으로 말이야.
*박지영 지사장은 업무와 공부, 육아 모두에 욕심 가득한 워킹맘이다.
전형적인 A형인 박 지사장이 일상에서 발견한 깨알같은 인생의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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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FIJI관광청 지사장 www.facebook.com/fijias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