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 시시각각 중계하는 TV 모니터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간 신문을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아, 현관에서 신문을 가져오면 한 쪽에 팽개쳐두곤 했다. ‘그 참사’ 이후엔 그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슬픈 선율만 온종일 들으며 일할 뿐이었다. 참으로 인간은 내일 일은커녕 코앞의 일도 알지 못한다. 인간의 목숨은 오로지 하늘만이 아신다는 사실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작년부터 없는 시간을 짜내 시작한 공부가 있다. 삼십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시작된 싸나톨로지(Thanatology) -. 직역하면 ‘죽음학’이지만 ‘임종영성학’으로도 불리며 싸나톨로지스트, 즉 임종영성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학문이다. 사회학 철학 심리학 종교학 의학 등의 커리큘럼은 대학원 수준이었고, 비싼 등록금이 아까워서라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었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이자 한국싸나톨로지협회 회장인 전세일 박사는 “지금까지의 의학은 질병치료에 중점을 둔 나머지 환자와 그 가족의 생명과 삶의 문제, 인간관계 회복의 문제, 감정치유의 문제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한 경향이 있다. 현대의학이 이런 것까지 의료 범주에 넣어 치료에 임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성숙해 갈 것이며 새로운 의료미학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종영성학의 목적은 죽음에 대해 공포나 두려움을 갖기 보다는, 그것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해 생명의 우연성과 유한성을 인식하고, 현재의 삶을 잘 파악하여 생명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하는 데 있다. 결국 웰다잉(well-dying)이 아니라, 웰리빙(well-living)을 공부하는 것이고, 죽음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생명의 존귀함과 소중함을 역설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죽음교육의 역설은 또 극단의 선택을 막을 수 있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불행하게도 자살률 1위다. 선진국은 한해 10시간 이상을 이에 대한 수업으로 자살, 학교폭력, 왕 따 문제를 해소하고 있다고 한다.
 
내가 이 과정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7년전 경험했던 ‘죽음 피정’이 뇌리에 깊이 각인됐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피해(避) 고요한(靜) 곳으로 머물게 하는 ‘피정’이라는 말이 있다. 피세정념의 줄임 말로 세상을 피해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와,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며 영혼을 맑게 가꾼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나는 유서도 써보았고 지도 신부님의 지시로 성당 제대 앞에 내 관을 놓고 치러지는 장례미사를 머리에 그려보기도 했다. 신부님은 관속에 누운 내 영혼이 육체에서 빠져 나와, 관을 둘러싸고 슬픔에 젖어있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어루만지며 작별하라고 했다. 미안했거나 고마웠지만 하지 못한 말들도 (그들은 듣지 못하지만)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해보라고 했다. 머리 속에서 가족의 얼굴과 마주하는 순간,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렀다. 이렇게 코앞에서 부모형제의 얼굴을 바라보고 어루만져본 때가 있었나 싶었다.
 
그 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마웠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마음 속으로 말하는데도 목이 메어 엉엉 울고 말았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달라진다. 개인적인 경험을 다른 이와 나누고 싶었고, 나이 들어 보람된 일이 될 것 같아 이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진도 참사는 바로 그때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설렁설렁 넘어가 생긴 일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여기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가까운 미래의 장미 빛도 없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일깨우는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새삼 읊조려본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 / 그때 그 일이 /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그때 그 사람이 /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 더 열심히 파고들고 / 더 열심히 말을 걸고 /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 더 열심히 사랑할 걸 / 반벙어리처럼 / 귀머거리처럼 / 보내지는 않았는가 / 우두커니처럼 / 더 열심히 그 순간을 / 사랑할 것을… / 모든 순간이 다아 / 꽃봉오리인 것을 / 내 열심에 따라 피어날 / 꽃봉오리인 것을! 
 
 
강문숙 맥스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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