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으로 방문해 우연히 찾은 그곳은 솔직히 제주에서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서울도 아니고 지방도시에서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거만하게도), 뉴욕이나 런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뮤지엄의 모습이었다. 빨간 외관부터 눈길을 사로잡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의 으리으리한 작가들의 작품들이다. 회화부터 설치작품, 영상작품까지 전 영역을 두루 아우르는 수집품들은 입을 쩍 벌어지게 했다. 시간에 쫓기면서도 세곳 뮤지엄을 층마다 다 돌며 나온 것은 ‘다 둘러보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었다.
으레 그렇듯이 소소한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작은 오름을 오르는 기쁨을 상상하고 온 제주였다. 아라리오뮤지엄은 그런 면에서 뜻밖의 선물 같은 것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 고마운 단서였다.
아라리오뮤지엄이 둥지를 튼 곳은 여행자들은 대체로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지역인 제주도의 구 도심이자, 과거의 낡은 건물이다. 특히 동문모텔의 경우엔, 과거 모텔이었던 흔적들이 제법 남아있다. 낡은 창틀과 창문, 타일을 붙인 화장실 등등. 이런 흔적들은 뮤지엄의 작품들과 만나 새로운 분위기를 입기도 하고, 때로는 그 자체가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흔적을 살렸던 전례가 드물기 때문에 그 공간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참신한 시도는 의외로 단순한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개관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아라리오뮤지엄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였다. 그러나 예술에 깊은 지식이 없는 내가 보아도 그곳은 매력적인 곳이었으니, 예상으론 방문객은 점점 늘어날 것 같다. 언젠가 제주 여행의 필수 코스로도 자리잡지 않을까. 제주공항에 내리면 뒤도 안돌아보고 좌로 우로 흩어졌었다면, 이제는 잘 만든 스폿 하나가 살려낼 구도심을 찾아가게 되길 기대한다.
차민경 기자 cham@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