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석 
주)내일투어
대표이사/관광학박사

“오늘 좋은 아침 그리고 우리 버스 탔어요. 구룡마을 갔어요. 여기서 여행사 직원 같이 연탄배달 했어요. 재밌게 이야기 했어요, 살기 힘든 사람 많아 도와주면 기분 짱이예요”
 
뭔가 어눌하게 보이는 이 글은 주정치(18세, 가명)라는 중도입국청소년이 내일투어 직원들과 함께 강남 구룡마을에서 사랑의 연탄나누기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안산이주아동청소년센터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주정치 학생은 현재 중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경기도 안산에서 살고 있다. 3살 때 어머니가 중국인인 아버지와 이혼하였기에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어머니가 한국인과 재혼 한 후론, 줄곧 중국에서 외할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2014년 1월 갑자기 한국에 입국하게 되어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나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기에 공식적인 교육은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자란 주정치 학생에게 한국은 정말 잘사는 나라이며 한국 사람은 모두가 부자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부자나라에 나만 동떨어지고 외톨이 같다는 생각이 온통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가 토끼를 쫓아 뛰어가다 갑자기 우물 속에 빠져 이상한 나라에 도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를 따라 갑자기 오게 된 한국은 완전 낯설고 자신만 소외되는 그런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중국에서 생활할 때와 달리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딱히 할 일이 정해져있지 않아 늦잠 자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아직 학교에 입학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혼자 있거나, 가치관의 혼돈 속에서 방황하거나, 동네 PC방에 가서 하루 종일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이런 주정치 학생에게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은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항상 누군가의 도움 속에서만 생활하다가 자신도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경험을 한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이 지치고 고단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정치 학생은 함께 참가한 말도 잘 통하지 않는 직원들과 연신 웃고 떠든다. 지난 여름 용산전쟁기념관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주정치학생은 그리 말 수가 많은 학생은 아니었다. 안산이주아동청소년센터의 다른 학생들 가운데 맨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학생이 오늘은 맨 앞에서 수다스럽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무엇이 이런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 냈을까? 알다시피 구룡마을은 아이러니 하게도 부자마을  강남 중에서도 가장 부자들만 거주한다는 타워팰리스 건너편에 위치한 판자촌 마을이다. 주정치 학생은 구룡마을에 처음 도착했을땐 완전 충격을 받았다, 부자들이 사는 나라 한국에 이렇게 반전드라마가 있을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러나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이 하루 종일 이어지자 몸은 점점 힘들어지는데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자신도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심장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다행히도 주정치 학생은 내년에 비록 남들보다 많이 늦었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내일투어에는 매년 12월 초 ‘돼지 잡는 날’이 있다. 1년 전 사내 봉사단 동아리에서 나누어준 돼지저금통을 한 곳에 모아 빨간 돼지저금통을 개봉하는 행사를 한다. 여기에서 모아진 기부금을 한 곳에 모아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 나눔 운동본부’에 각자의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어려운 가정에 직접 연탄을 들고 찾아가는 봉사활동을 한다. 올해에는 그동안 후원해 주던 안산 이주 아동 청소년센터의 학생들과 함께 연탄 나눔 봉사활동을 하며 그 어느 해 보다 가슴 뜨거운 한해를 보냈다.

내일투어 직원들은 책상에 돼지 한 마리씩을 키운다. 사실 요즈음 신용카드를 많이 쓰다 보니 동전이 귀해 저금통에 들어갈 동전 구하기가 정말 어렵다. 그러다보니 지폐보다 동전이 이곳에서는 훨씬 귀한 대접을 받는다. 지나가다 내일투어 직원을 만나면 카페에서 커피 사주는 것보다 동전 몇 개를 주는 것을 어쩌면 더 선호 할지도 모르겠다.

왜 돼지저금통은 빨간색일까? 다산(多産)을 상징하는 돼지가 복을 상징하는 빨간 옷을 입고 있으니 만사형통을 상징한다.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넣을 때마다 어려운 사람도 생각하고 스스로는 가슴이 뜨거워지니 일거양득 속칭 일타쌍피(?) 효과다. 주정치 학생이 연탄을 나르며 가슴이 뜨거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던 것처럼, 주말에 고해성사를 받고 홀가분해 진 것처럼, 어쩌면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말라고 경고하는 안도현의 시에서처럼 빨간 돼지 저금통은 극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자신에게 주는 뜨거운 연탄재는 아닐까?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