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업을 포함한 관광산업의 속성을 일컫는 다른 표현은 평화산업이라는 단어다. 평화로운 시기에만 존재할 수 있는 산업이라는 뜻이다. 전쟁은 물론이거니와 분쟁과 갈등이 심화된 지역은 당연히 여행을 위한 목적지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그 나라의 관광산업 역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동수단의 발달로 인해 각국의 교류 및 여행 인구가 확대되면서 관광산업은 각 국가의 주요 수입원으로 비중이 높아졌다. 이는 또 국가와 국가 간의 대립에서 상호 경제적 보복의 우선적인 볼모역할을 하게 되는 발전 아닌 발전을 가져왔다. 내부적으로는 북한과의 갈등으로 중단된 금강산 관광 금지 조치를 들 수 있고, 정치·정서적 갈등으로 인해 감소한 방한 일본인이 역시 그 예다. 

2001년 9월11일, WTC 빌딩에 비행기가 부딪히는 테러 장면을 거리 TV 화면으로 봤을 당시 얼큰하게 취해있었다. 공포와 함께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그 장면을 반복해 보면서 술김에 “영화 아냐?”라며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얘기로 인식했다. 그러나 먼 나라 얘기가 곧 나를 죽이게 만들 일이었음을 느끼는 데는 3~4일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전 세계의 모든 출장과 여행은 거짓말처럼 정지됐고 호텔 업무는 그저 속수무책으로 취소요청을 처리하는 일뿐이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 이후 상당기간 전 세계의 관광산업은 빙하기를 맞아야 했다. 

전쟁과 테러 같은 국가 간 갈등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2002년 끝 무렵부터 발생한 사스(SARS, 급성 중증 호흡기 증후군)의 여파로 인해 관광산업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최근 발생한 메르스 사태까지 보면 외부적인 요인으로 직격탄을 맞은 괴로운 경험은 부지기수다. 

관광산업 중에서도 호텔업은 외부적인 여파에 대응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호텔은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땅 위에 뿌리를 내린 ‘시설’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위기 시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호텔업 종사자는 철학적 사고의 깊이와 상관없이 늘 평화를 외쳐야 하는 ‘평화주의자’ 일 수 밖에 없다. 

호텔은 대규모 자본을 필요로 한다. 부동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한국 호텔에 투자 한다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오른쪽에는 일본이 왼쪽에는 중국이 자리 잡고 있고 특히 중국의 관광산업 영향력이 커져 가며 중국 자본을 포함한 많은 외국 자본이 호텔 건설을 위해 유입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규정하는 전제 조건이 ‘평화기’라는 상황이다. 반면 세계유일의 분단국가이자 최악의 경우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나라다. 마치 동전의 다른 양면을 지니고 있다는 특징이 상존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룩한 역동적인 한국은 마치 살얼음의의 춤판처럼 위태롭다. 이런 환경에서 호텔업은 늘 주변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평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호텔업은 분쟁을 반대하고 무력사용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며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모든 활동에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설혹 그 목소리가 결과를 바꾸지 못할 만큼 미약한 영향력일 지라도 호텔이라는 공간만큼은 평화를 존중하고 안전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공간이라는 호텔운영의 기준을 만들고 알려야 한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존재하는 호텔이라면 우리의 서비스가 갈등과 분쟁 시 어떤 상관관계 있으며 어떤 판단과 행동을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지는 숙고해 봐야 할 과제다.

평소 생각할 필요 없었던 평화니 분쟁이니 하는 거창하고 무거운 단어들이 피부에 와 닿는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7월12일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열린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식을 지켜보며 혹시 불똥의 방향이 애꿎은 호텔에 튀지 않을 까 조마조마했다. 행사 주최 측은 호텔의 내부 공간에서, 다수의 한국인 반대자들은 호텔 밖에서 호텔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대치하게 됐다. 이번 행사를 놓고 밀레니엄 호텔 측도 많은 고민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다행히 “일본 자위대 행사를 수용한 밀레니엄 힐튼은 각성하라”라는 성난 분들의 감정적 외침은 일절 나오지 않은 듯했다. 

어쩌면 밀레니엄 힐튼이 처한 입장이 우리나라 호텔들이 앞으로 더욱 빈번히 겪을 수밖에 없는 환경을 예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외교 정치 지형의 국가에서 싸드(THHAD) 도입의 결의에 찬 결정을 했다. 호텔이라는 공간에서 각 나라의 사람들이 첨예한 갈등을 표출할 괴로운 상황이 향후 생겨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호텔은 이러한 환경에서 어떤 입장이어야 하나 참 고민스럽다. 하지만 ‘평화주의자’임을 알려야 한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우리 한국의 호텔리어는 모든 사람의 평화를 존중하고 열망한다고 우기기라도 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 같다. 참 복잡한 세상이 되어 간다. 
 
유경동
유가기획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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