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누이 같은 꽃들이 모인 ‘한국자생식물원’
개불알꽃, 처녀치마꽃, 하늘매발톱꽃, 패랭이꽃, 노루오줌, 금낭화, 애기똥풀, 노랑매미초…생
소한 이름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장미나 튤립 등 외래종이 절대 줄 수 없는 짙은 향토색으로
바라보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한없이 포근하게 한다.


꽃잎마다 ‘사연’ 포기마다 ‘전설’
너무나 정겹다. 국내에서 서식하는 식물종은 학자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귀화식물 200
여 종을 포함해 모두 8,200여 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중 한국 고유의 토종식물을 일
컫는 자생식물은 약 4,300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4,300여 종의 자생식물 중 1,200 종에 이르
는 나무, 고사리류 등의 하등식물, 북한에서만 자라는 식물, 1·2년생 풀들을 제외한 천여종
의 토종 화초들은 관상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약용, 식용으로도 매우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
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토종화초들은 대부분 일찌감치 상업화에 성공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장미, 튤립, 백합 등 외래종의 위세에 밀려 잊혀지고 소외당하다 못해 멸종위기에까지 처해
있는 현실이다. 꽤 유명한 어느 식물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난 문학작품 등에서 줄곧 나오는 ‘이름 모를 한 떨기 꽃’이니 어쩌니 하는 표현을 제일
혐오한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가는 토종식물의 서글픈 처지를 단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장
미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화려함 못지 않은 단아함을 지닌 우리네 꽃들, 노란 후리지아
향기만큼 향기롭진 않지만 그 보다 더 매혹적이고 그윽한 향기를 지닌 우리네 야생화들이
다. 하나같이 저마다의 사연과 흥미로운 전설을 지닌 우리네 토종 화초들이야말로 우리의
근원이자 우리의 일부다.
그런 소중한 존재가 우리들 관심 밖에서 외롭게 사라지고 상처받고 있다. 지난 3월 한국식
물연구회는 90종의 자생식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생식물 절멸 원인' 보고서에서 변산
바람꽃, 개불알꽃, 모데미풀, 나도풍란 등 25종의 고유 자생식물들이 무분별한 채집이나 개
체수의 희소성, 개발 등의 이유로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너무도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 끝이 없다. 게다가 무분별하게 채취된 자생식물 중 상당수가 외국으로 유출
되고 있다는 의견도 강하게 제시돼 국가적 차원의 생물자원보호책 마련 또한 시급한 현실이
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환경부가 지난 4월 국내 자생생물의 다양성 보전을 위해 금강초롱
꽃, 가시연꽃 등 식물 190종을 ‘국외반출 승인대상 생물자원'으로 지정, 이들을 해외로 반
출하려면 환경부 산하 지방환경관리청장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한 조치는 매우 바람직했다
고 할 수 있다.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자락에 있는 ‘한국자생식물원'은 우리네 식물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
과 보전 열정을 기반으로 생겨났다. 공식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
월부터였지만, 그에 앞서 근 20년 세월의 인내와 끈기와 땀을 쏟아 부어야만 했다.
조상의 역사와 숨결이 살아있는 고궁의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대부분의 화초들이 외래종이
라는 것을 알고 난 뒤, 한없이 안타깝고 죄스런 마음 어찌할 길 없어 결국 자생식물 보전의
길로 뛰어들게 되었다는 원장 김창열씨.
“일반적으로 고유종으로 알고 있는 봉선화, 나팔꽃, 백일홍, 달맞이꽃, 개망초 등도 우리 토
종화초들이 아닙니다. 중남미 등지에서 흘러 들어온 외래종이죠""
김창열씨가 가장 애착을 느끼는 우리 토종식물은 멸종위기식물로 지정된 개불알꽃과 천연기
념물인 백리향 그리고 망개나무와 미선나무라고 한다. 기르기도 어렵거니와 야생 상태로 발
견하기도 힘든 귀중한 종이기 때문이란다.
김 원장의 한국토종식물에 대한 사랑과 열정 그리고 땀과 인내가 물씬 배어있는 식물원에
발을 들여놓으면, 마음이 끝간 데 없이 푸근해지고 가슴이 촉촉이 젖어온다.
한국자생식물원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조경소재관, 분경분화관, 재배온
실이 들어서 있는 유리온실이고, 나머지 하나는 야외 식물원이다.
조경소재관은 우리꽃으로 꾸민 아담한 정원이자 앞뜰이다. 우리네 각종 토종 식물들이 초록,
빨강, 노랑, 연두 등 강하게 시선을 잡아끌지만 결코 야단스럽지 않은 색동옷을 입고서 단아
한 자태로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여느 여염집 앞마당처럼 소박하고 소탈한 분위기가 퍽이나
구수하다.
바로 옆 칸에 있는 분경분화관에 들어서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이 곳에 있는 녀석들은
기묘한 모양을 한 수석이나 아기자기한 화분 등 갖가지 액세서리로 실컷 치장을 하고서 제
법 도도한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녀석들은 꽤 비싼 가격에 팔리기도 하는데, 그 도
도하고 뻔뻔한 모습에 비하면 그다지 비싼 가격은 아닐 듯도 싶다.
유리온실의 보호를 받고, 각종 액세서리로 치장한 모습보다는 야생 그대로의 모습을 맛보고
싶다면 작은 실개천을 건너 야외식물원으로 발길을 옮기면 된다. 한국자생식물원의 백미는
바로 이 곳 야외식물원이다. 3만3천여 평의 오대산 자락을 1천여 종의 우리네 꽃과 풀들이
끈끈한 생명력을 자랑하며 가득 채우고 있다.
꽃이 활짝 피었을 때의 모양이 마치 처녀들이 입는 치마와 같다는 처녀치마, 줄기에 길게
난 털이 마치 노루귀의 솜털을 닮았다해서 이름 붙여진 노루귀, 옛날 부인들이 치마 속에
넣고 다니던 작은 주머니와 비슷해서 며느리주머니라고도 불리는 금낭화, 뿌리에서 누린내
가 나서 이름을 얻게 된 노루오줌, 이름만큼 상큼하고 맑은 섬초롱꽃, 살짝 두드리면 맑은
소리로 대답할 것 같은 은방울꽃, 3개의 가지에 각각 3장의 잎이 나는 삼지구엽초, 한 번 눈
길주는 것만으로도 그 이름의 유래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개불알꽃 등 형형색색, 가지각
색, 천태만상의 우리 토종 꽃과 풀, 나무가 빼곡이 앉아 있다.
또 1.2km에 이르는 산책로도 마련돼 있어 숲 속까지 스스로 뻗쳐 올라가는 우리 자생식물
들과 오붓한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대충 잡아도 두어 시간은 할애해야 참 맛을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이곳은 넓고 또한 알차다.
때문에 엄마손, 아빠손 꼭 쥐고 자연학습에 푹 빠진 아이의 초롱초롱 맑은 눈망울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흐드러지게 만발한 꽃창포며 부끄러운 듯 살며시 고개만 내민 동자꽃 등 꿀
벌 마냥 이꽃저꽃 옮겨다니며 사진찍기에 여념없는 아마추어 사진작가의 모습도 그리 드문
풍경은 아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 한가지. 한국자생식물원은 입장료 대신 ‘우리꽃 구입권'을 구입해야 입
장이 가능하다. 우리꽃 구입권을 사면 원하는 우리 토종꽃이나 꽃씨를 선택해 얻을 수 있다.
이는 경영유지 차원보다는 우리 꽃과 씨를 널리 퍼뜨린다는 취지가 강한 김 원장의 경영방
침이다.
한국자생식물원 0374-332-7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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