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항공기가 유럽에 첫 취항한지 지난 6일로 만 20년을 맞았다. 도체 전반부 좌우측에 선명한 태극마크를 달고 서울을 떠나 장장 1만2천4백㎞에 달하는 북극항로를 따라 비행한 B707-320C 화물기 한 대가 파리의 오를리공항에 도착한 것은 1973년 10월6일 오전 9시, 한국민간항공사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인 유럽취항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던 날이었다. 대한항공의 유럽취항 20년사를 되돌아봄으로써 국력의 상징인 우리나라 민간항공산업의 위상을 가늠해본다. <편집자 주>
대한항공 화물기의 파리입성은 불모지였던 유럽시장에 최초로 진출했다는 사실과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항공화물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 사건이었다.
비록 주 1회 운항에 불과했지만 한달이상 걸리던 뱃길이나 도쿄, 홍콩을 경유하는 항공노선에 의존하던 유럽시장과의 거리를 불과 17시간의 직통코스로 단축시킴으로써 이 시장에 대한 종래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버린 것이다.
당시 유럽시장은 전세계 수출품의 40%이상과 세계항공화물량의 70%를 점유하는 거대한 시장이었다.
실제로 파리 화물노선은 개설 이듬해인 74년에 1천1백톤을 수송했으며 75년에는 1천6백26톤을 실어 날랐다.
화물기가 유럽에 첫발을 내디딘지 1년6개원만인 75년3월15일에는 서울과 파리간 여객노선도 주 1회 개설돼 유럽시장에 대한 한국인의 진출이 본격화됐다. 파리여객노선개설은 그때까지 외국항공기에 의존해야 했던 유럽행의 서러움을 일소하고 특히 지명도가 낮았던 우리나라의 존재를 드높이는 민간외교적 역할까지 해냈다는 점에서 사뭇 그 의의가 컸다.
뿐만아니라 아시아행 유럽인 여행객들의 관심을 유럽인 여행객들의 관심을 우리나라로 끌어들이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함으로써 관광산업 발전에도 단단히 한몫을 하게됐다.
실제로 석유파동의 후유증이 가시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도 아시아행 유럽인 수요를 흡수하고 일본과 동남아 승객들을 서을로 데려와 유럽으로 수송하는 전략을 전개해 여객기 취항 첫해인 75년에 1만6천여명, 이듬해에는 3만여명을 수송했다.
대한항공은 파리취항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취리히, 암스텔담, 프랑크푸르트, 런던, 모스크바, 로마, 밀라노등 유럽노선을 확대 개척해 상대국과의 상호주의 원칙이 까다롭게 적용되는 어려움 속에서도「유럽노선 매일 운항체제」를 구축해 나갔다.
20년이 지난 현재 대한항공의 유럽취항지는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독일, 영국, 러시아, 이탈리아등 7개국 8개도시로 늘어났으며 운항횟수도 여객기 주 15회, 화물전용기 주 6회 왕복운항 수준으로 증가했다.
화물수송량은 취항 이듬해인 74년에 1천4백톤 뿐이었던 것에 비해 92년도에는 4만6천톤으로 약 32배 늘어났으며 여객도 76년 3만여명에서 작년에는 36명으로 약 11배가 성장했다.
또한 90년3월 모스크바 취항과 소련영공 통과 실현으로 대한항공의 유럽항공편은 시베리아 항로를 따라 운항함으로써 종전 북극항로의 17시간이나 걸리면서 앵커리지에 주간 기착까지 해야했던 것에 비해 약 4시간이 줄어든 13시간대로 논스톱 운항하고 있다.
이미 허용되고 있는 몽골영공 통과와 함께 앞으로 중국하늘이 열리면 비행시간은 11시간대로까지 줄어들어 우리나라와 유럽은 더욱 가까워지고 교역량 또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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