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15분. 인류 최초의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졌다. 살아남은 몇몇 사진기자조차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할 만큼 도시는 처참하게 파괴됐고 모든 것을 잃은 히로시마는 근대라는 시간을 공백으로 간직하게 됐다.

일본 삼경미야자마

히로시마하면 흔히 원자폭탄을 떠 올리기 쉽지만 여행지로서의 히로시마현을 소개한다면 미야기현의 마쓰시마와 교토현의 아마노 하시다테 등과 더불어 일본 삼경 중 하나라는 미야지마를 먼저 꼽을 수 있다. 현지 주민은 비록 2,200명에 불과하지만 삼대 절경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해마다 30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그 중 외국인은 10만명 가량이다. 미야지마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관광 포인트는 역시 물 위에 떠 있는 '이츠쿠시마'신사와 신사 앞에 늠름하게 솟아 있는 '오오토리이'다. 히로시마가 초행길이라도 달력이나 엽서에서 이미 한 번쯤은 보았을 법한 이츠쿠시마 신사는 미야지마의 상징으로 자리잡은 빼놓을 수 없는 추천 관광지.

이츠쿠시마 신사를 두고 많은 이들이 물 위에 떠 있는 신사라고 설명하지만 항상 수면 위로 떠 있는 신사의 장관만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엄밀히 얘기하면 하루 두 번 만조와 간조 때 바닷물이 차고 빠지는 시간을 잘 맞춰야 엽서에서처럼 물에 잠긴 신사를 볼 수 있다. 또한 주말에 신사를 찾으면 일본 전통 혼례를 보는 신선한 경험도 기대할 만하다. 신사에서의 결혼은 비용이 저렴해 1년에 100쌍 정도가 예식을 하곤 하는 데 전통 혼례인 만큼 하루에 오전과 오후 두 번만 식을 올린다고 한다. 식이 진행되면 관광객들도 예식 과정을 볼 수 있는 데 신기한 마음에 플래쉬를 터트리며 사진을 찍는 것은 삼가야 한다.

미야지마는 첫 인상이 독특하다. 섬에 첫 발을 내디딘 손님을 맞는 주인은 사람이 아니고 사슴이다. 미야지마에서는 어디를 가든 사슴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이 섬의 수호신처럼 사슴을 아끼는 데다 관광객들이 계속 먹이를 주기시작하면서 산속에 살던 사슴이 아예 보금자리를 산 아래로 옮겨 버린 탓이다. 사슴의 왕성한 번식력은 현지 주민들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덕분에 배가 오가는 부두에는 관광객을 상대로 사슴의 먹이를 팔며 생활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이 아니다.

비록 크기는 작은 섬이지만 미야지마는 이츠쿠시마 신사외에도 섬 곳곳에 볼거리가 많아 최소한 3시간 이상은 머물러야 기본적인 관광이 가능하다. 야생원숭이공원과 서일본에서 제일가는 규모의 미야지마 수족관 등이 자랑이며 각종 산책로도 여유롭다. 또한 20여 곳이 넘는 정갈한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일정만 허락한다면 하루 이틀 머물며 찬찬히 휴식을 취하기에도 적당하다.

아픈 역사의 상징히로시마

문화와 사적과 자연이 어우러진 미야지마가 일본의 삼경 중 하나라면 뼈만 남은 앙상한 원형 지붕의 원폭돔은 히로시마를 세계에 알린 아이러니한 역사의 상징이다. 히로시마가 원폭투하지로 선정된 배경은 일본 주고쿠 지방의 중심도시였던 히로시마가 2차대전 당시 전쟁물자를 생산하는 군수산업의 중심지이자 군항(군항)으로 이용됐기 때문이다.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원폭 투하로 당시 인구 34만3,000여명이었던 히로시마는 7만명이 사망하고 13만명이 부상당했으며 당시의 건물 또한 모두 한 줌 재로 사라져버렸다. 이 때 희생된 20여만명 중에는 한국인도 상당수가 포함돼 있다. 수많은 인명의 희생외에도 피폭으로 히로시마에는 원폭돔을 제외하고는 근대 건축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 1996년 미야지마와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원폭돔을 제외하고 히로시마 성을 비롯해 지금 거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건축물은 일본 패망 이후 복원된 것이다.

원폭이 투하 된지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 히로시마 거리를 거닐며 당시의 참상을 떠올릴만한 흔적을 찾기는 힘들지만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자료관 만큼은 당시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얼핏 보는 평화기념공원 주위는 봄이면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어두운 역사의 한 장면이 차곡차곡 정리돼 있다.

원자 폭탄이 떨어진 지점을 중심으로 당시의 참상이 자세히 소개되고 있으며 녹화해 놓은 당시 목격자들의 인터뷰 등도 들을 수 있다. 몇 장 남지 않은 당시의 사진과 마네킹 등으로 재현된 모습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 인류에게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진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히로시마에서는 매년 8월6일마다 평화공원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매년 8월5일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제가 개최되고 있다. 하지만 위령제가 살아 남은 모든 이들의 아픔을 덮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피폭자의 원호법 적용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지난 6일 히로시마 원폭 희생자 위령식에 참석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한국 등 외국에 거주하는 피폭자들도 일본 국내의 피해자와 똑같은 대우를 받도록 해달라는 요청에 대해 '가능하면 연내에 결론을 내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결론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확답을 할 수 없는 상태다.

히로시마 글·사진=김기남 기자 gab@traveltimes.co.kr
취재협조=일본항공 02-757-1708, 히로시마현관광연맹 082-221-6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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