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여우 客을 반기다
버스가 멈추니 모두들 창밖을 내다본다. 길가 옆 풀밭에 은여우 한 마리가 우리를 쳐다본다. 반짝이는 털, 초롱초롱한 눈. 작고 야무지다. 새끼들은 숲속으로 감춰놓았지만 이녀석은 두려움이 없다. 홋카이도의 자연사랑이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다.

글 싣는 순서
1. 불의 나라
2. 언덕의 나라
3. 불의 나라

높은 산, 맑은 호수, 살아있는 화산과 그림같은 언덕. 여기에 곰, 백조, 그리고 맛있는 북해도 털게가 있는 북쪽의 나라. 일본의 대자연을 가득 품은 홋카이도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눈의 왕국이다.

일본 전체 면적의 1/4이면서 그중 60%가 숲으로 이뤄져 있다. 숲속에는 지금도 2천여마리의 곰이 살고 있다. 홋카이도의 자연을 대표하는 것은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이국적인 것은 아직도 연기를 뿜어내고 있는 화산이다.

가장 유명한 우스산은 30년에 한번씩 분화를 한다. 하지만 작년엔 13년만에 분화를 재개해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관광객의 발길도 주춤했었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자상한 화산이라고 감싼다. 화산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 연기와 소리로 예고를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많은 관광자원들을 선물했다. 90년전 분화때는 온천을, 55년전엔 쇼와신산을, 그리고 작년엔 새로운 화구를 만들어 줬다.

불의 나라에서 제일 처음 들르는 곳은 노보리베츠 온천이다. 노보리베츠는 홋카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의 말인 ‘누프르베츠’에서 온 말로 진한 반투명색을 지닌 하천이라는 뜻. 하루 1만톤이라는 자연용출량과 유황천, 유화수, 식염천, 명반천등 11종류의 다양한 온천이 자랑이다.

우스산 분화가 있었던 작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9,000여명의 한국관광객이 방문했고 온천에 일가견이 있는 일본에서도 벳푸, 아타미와 함께 3대 온천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1시간 거리로 교통편이 좋고 계절마다 벚꽃이 만발한 진입로와 단풍계곡이 유명하다. 호수와 테마파크, 골프장, 스키장 등 다양한 관광시설이 잘 정비돼 있어 인기는 계속되고 있다.

화산지대의 흔적을 가까이서 보려면 지옥계곡으로 간다. 1971년에 미국관광객 한명이 화상을 입어 지금은 울타리를 쳐놓았지만 여전히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다. 꿈틀대며 흘러내리는 용암을 기대한다면 다소 심심하겠지만 쉽게 볼 수 있는 경관은 아니다.

직경 450m의 거대한 폭발화구는 영화 세트장에서나 봄직한 기괴한 모양이며 지옥계곡답게 열탕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 물의 온도는 섭씨 70∼105도까지 올라간다. 전에는 4㎞밖 역에서도 하늘로 올라가는 수증기가 보였지만 지금은 화산활동이 약해져서 얌전한 편이다. 아직도 비오는 날이나 겨울에는 수증기가 대단하다고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테마파크 중 하나인 노보리베츠 곰목장이 나온다. 산정상에 모인 500마리의 곰들은 지금은 갇혀있지만 이 산의 주인이다. 아이누족은 곰을 가리켜 ‘키문카무이’라 하는데 산의 신이라는 뜻이다. 먹이를 달라며 재롱을 피고 자전거도 타고 공놀이도 하는 곰의 모습은 어린이들에게 웃음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자연을 사랑하는 홋카이도와는 어울리지 않는 곳일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어 도야호에 도착한다. 일본에서 3번째로 큰 칼데라 호수로 섬도 4개나 있다. 완벽한 휴식이 기다리고 있는 곳. 푸짐한 해산물 요리에 털게 한마리 먹고 나면 종류도 다양한 온천이 기다리고 있다. 노천탕에 앉아 밤하늘과 호수를 보니 신선이 따로 없다. 넓고 잔잔한 호수에 유람선이 뜨면 불꽃이 하늘에 가득하다. 피고 지는 불꽃처럼 도야호의 유희는 짧기만 하다.

일본 홋카이도 글·사진=한정훈 기자
취재협조=일본국제관광진흥회 02-732-7529

특명 ! 쇼와신산을 감춰라

땅이 올라와도 사람들은 몰랐다. 우스산의 기생화산인 쇼와신산은 세계에서 유일한 베로니제 화산. 안에서 용암이 형성되면서 돔처럼 땅이 부풀어오르며 생긴 산이다. 농사짖던 땅은 1943년 12월부터 하루 평균 50㎝씩 해발 407m까지 융기됐다. 그러나 일본열도를 떠들썩하게 할만한 이 자연의 기적도 전쟁 앞에서는 무색했다.

당시 전쟁에 모든것을 걸었던 일본정부는 가미가제까지 부활시키며 신과 초자연적인 힘에 의존했다. 그들에게 화산은 불길한 조짐이였다. 결국 쇼와신산은 땅을 뚫고 융기하며 연기를 뿜었지만 신문엔 단신으로 단 3번 보도되는데 그쳤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예 화산을 잠재우려는 시도도 뒤따랐다. 용암이 나오면 미군폭격기가 지형을 가늠할 수 있다는 주장에 강을 막아 불꽃을 막으려 한 것이다.

이마저 실패한 일본 정부는 생각을 바꿔 화산을 홍보전략으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홋카이도 신문 1944년 9월7일자엔 “정말로 신이 전력에 도움을 주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게재된다. 화산재가 공중에 날리는 사진과 함께 “하늘에서 시멘트를 보내줘 활주로를 지을 수 있었다”고 보도한 것. 하지만 화산 때문에 철로공사 코스를 옮기며 애를 먹은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결국 쇼와신산이 일본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려진 것은 전쟁이 끝난 후 동경 아사히 신문 1945년 10월22일자 보도를 통해서다. 때문에 이곳은 노인들에게 인기다. ‘그당시 그런 일이 있었다니 꼭 가보고 싶다’는 것. 지금도 쇼와신산의 연기는 계속되고 있다. 당시 이지역 우체국 소장이였던 미마츠 마사오씨는 사비로 주변의 농지를 구입하며 죽을때까지 쇼와신산만을 연구했다. 그의 박물관이 함께 있다. 이래저래 놀라운 일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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