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가와막부의 시대는 끝났다. 나고야를 찾은 11월의 마지막 날, 황후의 산기에 전 일본은 들썩였다. 그들 일본인에게 천황은 오랜동안 상징적인 우두머리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죽었다.

메이지유신과 제2차 세계대전, 한국전쟁을 겪으며 일본은 많이도 변했다. 특히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전국 통일의 무장들을 배출한 나고야 땅은 대영주의 거성이 있던 곳에서 현청 소재지로, 마침내는 도요타자동차의 본사가 자리한 산업중심 도시로 탈바꿈했다. 이땅 사람들의 인식 역시 많이도 변할 만한데….
400여년 전 유령의 그림자는 여전히 그곳을 떠돌고 있었다.

■ 1537년 - 전국시대

오리떼의 유영과 까마귀들의 휴식을 방해할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멎은 듯 조용히, 기소강은 그렇게 흘렀다. 전국 전란시대를 통일의 기운으로 이끈 오다 노부나가의 숙부는 평화로운 강,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성을 세웠다. 일본 현존의 최고(最古), 개인이 지닌 유일한 성인 이곳은 이름하여 이누야마성이다. 벌써 465년 전인 1537년의 일. 낡거나 더럽혀질 만도 한데 산책로, 정원, 성 모두 지난 세월을 뛰어넘은 듯 정갈하다.

사계절 내내 벚꽃이 피는 인상적인 정원 산책은 잠시. 노약자나 임산부, 겁 많은 여인네와 남정네들은 성내 출입을 잠시 고려하시라. 나고야 땅, 특히 아이치현에서라면 비일비재 보게 될 장군의 무기구와 병풍을 보기 위해 직각에 가까운 계단을 오를 것이니. 고민에 고민. 허나 계단을 오르는 비밀은 다른 곳에 숨어 있었다!

기소강 넘어 저 멀리 기후현과 아이치현 이누야마 시내, 노비평야와 기소봉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루로 둘러 사방을 감상할 수 있게 만든 성의 꼭대기는 아이치현 최고의 전망대임에 틀림이 없다.

■ 아즈치 모모야마시대

일본을 대표하는 삼영걸(三英傑)이 활약한 전국시대 말기를 아즈치 모모야마시대라 한다. 대략 1568년에서 1600년 사이. 무장과 닌자만이 난립했을 듯한 당시, 실은 상공의 변혁이 일어나고, 문화는 찬란한 번영기를 맞는다.

상공업조합인 자(座)가 지닌 독점, 시장세 등은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을 방해한 주된 요인. 오다 노부가나는 라쿠이치 라쿠자를 발표한다. 시장세와 자를 없앤다는 뜻이다. 세와 독점을 없앴으니, 경제가 활발해졌음은 말할 나위 없다. 문화는 그러한 바탕위에서 꽃을 피웠다. 에도시대 연극 가부키의 전신인 여배우 집단의 춤은 이때 태어났다.

이러한 당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재현한 테마파크가 미에현에 있다. 이세의 전국시대촌, 이세 센고꾸 지다이무라다. 일본의 민속촌이라 할까. 단 한국의 그것과 다르다면 7개의 극장에서 수시로 상영되는 연극에 있다. 역사, 종교, 예절 등 주제도 다양하다.

연극의 매력에 빠진 당신이라 할지라도 아즈치성은 놓치지 말고 볼 일이다. 노부가나 사후에 없어져 환상의 성이라 불린다더니, 이곳에 있었구나!

가짜였다. 가짜 중의 진짜라면 온 벽에 금(金)칠을 한 꼭대기 방. 워낙 단단하니 가루라도 내어 볼까 한다면 오산이다. 빛의 위치에 따라 변하는 방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기가 막힌 조망에 탄성 한번이면 족하다.

■ 에도시대

오다 노부나가는 자신의 신하인 아케치 미쯔히데의 손에 50년 생을 마감한다. 그리하여 남은 두 무장은 노부나가의 바통을 이어받아 에도시대를 연다. 우두머리가 있으면 아랫사람이 있는 법. 막부는 자신의 아래에 지방 영주 격인 다이묘를 두고 그들을 법으로 다스렸다.

나고야의 도쿠가와 미술관은 이들 다이묘의 유품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잘 가꾼 정원처럼 아담하고 올망졸망하지만 대부분 국보급 전시물. 사진을 찍는 것조차도 금지다. 특히 제6전시실의 겐지 모노가타리 그림 두루마리는 만질까 닳을까 사본만을 전시해 놓은 일본의 자랑이다.

이렇게 저렇게 윗분들의 삶만 보고 지나칠 수는 없는 법이다. 말 없고 탈 없는 것만 빼고는 한국의 북촌과 닮은 기후현의 다카야마시는 에도시대부터 이어진 서민의 도시다. 상점과 가옥은 대를 이은 자손들이 살며 지키고, 시(市)는 이들을 지원한다. 아담하고 정겹고 조용하고 깨끗하다.

마을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다카야마의 성주인 가나모리가의 별채, 다카야마 진야다. 별채이긴 별채로되 에도시대 장군의 영지가 된 후로는 메이지시대까지 지방 관청으로 주로 사용됐다. 지금은 여행자들이 찾는 곳인지라 사과와 단무지, 사루보보 인형 등을 파는 번개시장의 상인들이 다카야마 진야 앞을 메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죽었다

마지막까지 남아 근세 봉건제를 완성한 인물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1615년까지 치른 오사카 전투. 도요토미의 흔적을 말끔히 없애고 천하를 통일한 영광은 잠시, 다음해인 1616년에 그는 죽었다.

죽어가는 도쿠가와는 ‘나를 구노산에 묻어주오’ 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유언에 따라 구노산 도쇼구 신사는 호화로운 장식과 더불어 만들어졌다. 후지산이 보이는 시즈오카현이다. 신사를 찾은 일본인들은 오메쿠지라를 사서 점을 본 후 몹쓸 운이 따르면 신사 곁에 조용히 묶고는 도쿠가와의 자비가 베풀어 지기를 바란다.

바다와 산으로 둘러싸인 경치 또한 일품이라. 조금 더 욕심을 내어 니혼 다이라 언덕으로 오르면 햇살 찬란한 바다와 도쇼구 신사의 멋진 조화를 감상할 수 있다. 가장 멋있는 100개의 일본 관광 장소 중 하나라는 니혼 다이라 언덕은 도쇼구 신사와 케이블카로 연결돼 있다.

나고야 글·사진=이진경 객원기자 jingy21@hanmail.net
취재협조=일본항공 02-757-1708, 나고야시 81-52-972-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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