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거름은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시작됐다. 나고야 시내의 높다란 빌딩보다 더 큰 달이 떠올랐고, 도바시에 도착했을 즈음에야 달은 작아졌다.

도바의 온천-달빛 아래 몸을 녹이다

나고야에서 30분이면 닿는 미에현에서도 3시간은 족히 들어간 곳. 사방이 어둠에 휩싸여 온천여관의 네온사인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곳.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할퀴는 그곳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몸을 데웠다.

남도 여수 땅을 찾은 얼마 전, 내내 그곳을 섬이라 착각하며 돌아다녔다. 주변을 맴돌며 육지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섬은 그래서 그리움이었다. 뭍 사람들의 발길을 그리워하고, 육지와 연결될 언제인가를 기다리는.
도바는 여수와 같은 곳이었다. 바람이 찬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바다

어부와 해녀의 생계 창고였던 바다는 뭍 사람들의 발길을 돌릴 만큼 아름다웠다. 그가 드러내거나 품은 아름다움에 뭍 사람들이 애달파 하자, 급기야는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마’ 하고 나섰다.

미키모토 진주섬은 미키모토 고키치씨가 세계에서 처음으로 양식진주의 생산에 성공한 섬이다. 백화점에서 진주를 사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이 섬으로 몰려들자, 돈 아니 진주로 치장한 박물관이 세워졌고, 진주양식 공정 쇼와 해녀 쇼가 펼쳐졌다. 많은 이들은 얇은 옷 하나만 달랑 걸치고 차가운 바다로 들어간 해녀를 동정하고는, 쇼핑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바다가 품은 것이 조개 뿐이겠는가. 도바수족관은 바다 속 각종 생물을 전시해 놓은, 그야말로 대형 수족관이다. 인기만점의 돌고래, 수달은 기본. 인어 전설의 모델이 됐다는 듀공이 암수 서로 떨어져 노닌다. 영업부 나카세코씨는 “수족관에서는 처음으로 새끼 낳는 것을 시도해 볼 것”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성공을 거둔다면 수족관은 세계적인 자랑거리를 만들게 될 테며, 관람객은 젖 먹이는 모습이 인간의 그것과 닮았다는 듀공의 면모를 볼 수 있을 테다.

과거, 도바의 바다는 어부와 해녀를 먹여 살렸다. 그리고 현재, 도바의 바다는 여전히 그들을 먹여 살린다. 리조트와 쇼핑센터, 수족관의 직원도 함께. 문제라면 아름다움이다.

게로의 온천- 깊은 산속 옹달샘

기후현은 도카이지구(東海地區)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볼 수 없는 곳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 싸인데다가 겨울 폭설은 어김이 없다. 바닷바람과는 또 다르게 매섭고 춥다.

헌데 냇물이 얼고 눈이 쌓여도 사시사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마을이 있다. 천년도 전에 발견된 온천이 산 위에 있어 개발할 수 없었던 곳, 십년 전만 해도 오가기 힘들었던 골짜기 중의 골짜기, 게로다.

꼽기 좋아하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3대 온천 중의 하나’라고 칭해질 정도니 물 좋기로 소문은 날대로 난 상태다. 골짜기 마을에 특급열차가 서게 될 때까지는 소문도 한 몫 했을 터였다.

1930년대부터 온천여관은 세워지기 시작했다. 온 마을이 옛 냄새 폴폴 풍기는 것은 당연지사. 가격에 비해 약간은 낙후된 여관 시설에 말 한마디 할 법한데, 모두들 온천욕 후 벙어리가 됐다. 그만큼 물이 좋다.

그래도 절대 돈 내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사람! 진짜 노천탕을 이용해 보시라. 마을을 관통해 흐르는 강 가에 주민들의 단골 탕이 있다. 다리 위에 서서 구경만 하는 사람은 한국인이라니, 위용 한번 대단하다. 단, 여성은 밤 12시 이후에.

그리고 정원

온천을 하고, 바다를 보았으니, 슬슬 먹는 즐거움을 찾을 차례다. 더워진 몸을 맥주로 식히기가 익숙해질 무렵, 단.순.히 차를 마시러 우라쿠엔을 찾았다.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먹는 즐거움이 아니었다. 입안에 맴도는 쓴 기운과 함께 즐기는 여유였다.

다도를 지키며 차를 마시는 데 일가견을 보였다는 오다 노부가나의 동생 오다 우라쿠의 정원, 아이치현 우라쿠엔에서는 그 여유를 마신다. 쓰고 단 것의 조합인 다방식 커피에만 익숙해진 혀가 놀랄 일. 아주 단 팥 뭉치를 입안에 넣어 입을 달게 만든 후, 진한 차를 가득 물면, 풀 향기가 주위를 맴돈다. 온갖 들꽃과 대나무로 풍성한 싱그러운 정원에 싱그러운 향기라. 온천으로 매끈해진 몸에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다.

나고야 글·사진=이진경 객원기자 jingy21@hanmail.net
나고야 취재협조=일본항공 02-757-1708,
나고야시 81-52-972-2425

여행메모

■ 미에현 059-224-2390, 기후현 058-272-1111, 아이치현 052-951-8580
■ 나고야시와 아이치현, 미에현, 시즈오카현, 기후현을 도카이지구(東海地區)라 한다.
■ 각 현은 나고야 공항에서 버스, 기차, 신칸센을 이용해 30분~1시간30분 이내에 닿을 수 있다.
■ 나고야와 시즈오카현은 신칸센으로 연결, 나고야에서 게로는 특급열차를 이용한다.
■ 2005년 아이치현의 엑스포에 맞춰 중부국제공항이 개항될 예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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