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은 2000여년간 외세의 침입으로 고통을 당해야 했고, 50년대 이후 냉전시대 강대국의 대리전으로 긴 전쟁을 치룬 뒤 북측에 의해 무력 통일돼 아직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오랜 전쟁의 잔해가 곳곳에 남아있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5월의 베트남은 힘겨운 현실을 그들 특유의 인내로 견디며 곧 찾아올 우기를 기다리는 베트남인들의 더운 숨결로 가득했다.

후에 왕궁(Hue Citadel)

인도차이나의 등줄 베트남. 국토 모양은 베트남 사람이 일상생활에서 물건 운반용으로 쓰고 있는, 기다란 대나무 막대기 양 끝에 바구니를 매단 가인(Ganh)이라는 도구와 비슷하게 생겼다.
남중국해를 향해 굽어있는 잘록한 허리 중심부에 베트남 최후의 원조왕조(1802∼1945년)의 수도 후에가 자리잡고 있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국토와 경제난으로 허덕이는 베트남의 중심부에 위치한 후에는 베트남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많은 역대 왕들의 무덤과 유적이 산재해 있으며 후에 왕궁은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기도 했다.

후에 왕궁은 전체가 인공호(湖)로 둘러 싸여있다. 입구에는 베트남의 혁명 영웅이자 구(舊)베트남민주공화국의 초대대통령인 ‘호치민’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붉은 기운이 도는 황금빛 지붕 등 그 전체적인 모습이 중국의 자금성과 흡사하다. 성곽에는 총 4개의 문이 있다. 관광객들의 출입은 주로 정문인 남문에서 이뤄진다. 동문은 인간의 문, 서문은 미덕의 문, 남문은 정오의 문, 북문은 평화의 문을 상징한다.

성은 외성인 경성과 내성인 황성, 그리고 황제의 거처인 황궁으로 나눠진다. 황제만이 건널 수 있었다는 다리인 금수교 아래에는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이 피어있었다. 다리를 건너면 커다란 단층건물인 태화궁이 보인다. 이 궁은 1805년에 구엔 왕조를 회복한 지아롱(Gia Long)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이곳에서는 황제의 즉위식이 행해졌으며 황제가 앉았던 금장식의 화려한 의자가 가운데 놓여있다. 당시에 비해 색이 많이 바랬지만 궁의 지붕과 내부 장식 등이 온통 황금색을 띄고 있어 당시의 호화로움을 짐작케 한다.

태화전을 옆으로 원조의 보제사 현임각이 있다. 원왕조의 황제를 상징하여 만든 9개의 청동 분향로는 각각 19세기 황제들을 나타내고 있다. 중앙에 있는 분향로가 위대함을 상징하는 지아롱 황제의 것이다. 각 황제의 상징인 영원, 순수, 부, 신비, 통찰력, 미덕, 빛남, 저명 등을 나타내고 있으며 표면에는 사계절이 그림으로 표현돼 있다. 왕궁 주위에는 동바강을 비롯 4개의 강이 감싸 돌고 있다.

궁의 뒤쪽에는 비원 등 여러 유적이 있는데 지붕이 프랑스 풍의 흰색과 푸른색의 타일로 장식돼 매우 화려했을 당시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오랜 전쟁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듯 곳곳이 심하게 훼손돼 있었다. 성곽 맨 끝쪽에 닿으면 인공 호를 경계로 오늘을 사는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 행렬이 보인다. 곡절 많은 역사의 접점을 지나 오토바이 행렬을 따라서 베트남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다.

티엔무 사원(Thien Mu Pagoda)

후에 시내에서 4Km 떨어진 티엔무 사원은 1601년에 이 지방의 군주에 의해 세워졌다. 사원의 앞쪽에 흐르고 있는 흥강은 수송선이 다니고 마을 아이들이 수영을 하며 아낙들의 빨래터로 이용되는 살아있는 강이다. 강을 뒤로하고 계단을 오르면 7층으로 된 팔각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빛내는 석탑이 있다.

이 탑은 2,124m 로 각 층에는 불상이 안치돼 있다. 탑의 양 옆에는 정자가 있는데 오른쪽 정자에는 대리석으로 된 거북과 비석이, 왼쪽 정자에는 그 소리가 후에 시내까지 들린다는 커다란 종이 안치돼 있다. 오랜 시간 흥강을 바라보며 사원을 지켜온 절 입구의 탑을 지나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회색과 갈색 승복을 입은 스님들이 차분하고도 바쁘게 사원을 오가고 있다.

사원 곳곳의 키큰 열대나무들과 새소리, 향내, 외국 관광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동서와 고금을 한자리에서 느낄 수 있다. 사원의 뒤쪽에는 소나무 숲이 잘 정돈돼 있다. 사원과 약간 거리를 두고 있는 이 소나무 숲에 들어와 있으면 베트남의 5월의 열기와 복잡한 세상사가 소나무 향에 금새 묻혀버린다.

후에 페스티발

세계 각국의 공연단이 참여한 ‘ 후에 페스티벌(Festival Hue 2002)’이 지난 5월4일부터 15일까지 후에 왕궁에서 열렸다. 5월4일 저녁 개막식을 시작으로 프랑스를 비롯해 라오스,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참여로 성대하게 펼쳐진 이번 페스티발은 각국의 전통 민속춤과 노래, 연주,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공연으로 알차게 꾸며졌다.

지난 2000년에 이어 새천년을 맞아 베트남의 문화를 알리고 세계 여러 나라와의 문화적 교류를 강화한다는 취지 하에 열린 ‘후에 페스티벌’은 국제적인 관광 축제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개막식은 후에 왕궁 앞에 ‘Ngo Mon광장’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화려하게 수놓은 베트남 민속의상 아오자이를 차려입은 공연단의 전통춤과 함께 선보인 메인 무대는 베트남 각지에서 몰려든 현지인들과 세계 여러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었음에도 질서 있게 진행되는 행사와 사람들의 여유있고 흥겨운 분위기에서 베트남의 숨은 힘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김덕수 사물놀이 팀도 축제에 참가해 흥겨운 한마당을 펼쳤다.

뜨거운 햇볕아래에서 낮부터 무대 준비에 열심인 김덕수 씨는 “10여명의 팀원들 중 3명이 배탈 때문에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베트남을 찾는 외국인들은 무엇보다 음식 조심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칠 만도 할텐데 온통 땀 범벅이 되어 무대 위에서 현지인과 손짓 발짓을 해가며 베트남의 지독한 여름 더위를 잊고 있었다.

외세의 오랜 침입 속에서 굴곡 많은 한의 역사를 가진 베트남은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있다. 비슷한 역사만큼이나 우리가락에 흥겨워하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베트남 글·사진=김혜진 기자 jspace@traveltimes.co.kr
취재협조=베트남항공 02-757-8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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