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발리 테러 사건의 여파로 여행업계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연이어 발생한 필리핀에서의 연쇄 폭발사고는 불안심리를 더욱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암울한 세계 경기전망과 미국의 이라크 공격 가능성 등 각종 외부 악재의 파고를 과연 한국의 여행업계가 잘 극복할 수 있을 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지난 12일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휴양지 중 한 곳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사건은 여행업계에 치명타를 날렸다. 순항을 거듭하고 있던 하나투어의 발리행 전세기 운항이 즉각 중단됐으며, 정부와 한국일반여행업협회(KATA)는 즉시 발리 여행 자제를 촉구했다. 발리로 여행을 계획했던 여행객들의 예약 취소 및 목적지 변경 사태도 러쉬를 이루고 있어 관련 업계가 애를 태우고 있다.

쉽게 목적지를 변경하지 않는 경향이 강한 허니문 상품의 경우 일단 10월 예약자를 중심으로 예약 취소 및 목적지 변경이 이뤄지고 있으며, 11월 이후 예약자의 경우 현재는 일단 사태 추이를 지켜보자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전문 업체인 명산관광 김세희 이사는 “지난 14일 70여쌍의 허니문 커플이 당초 예정대로 가루다인도네시아항공을 이용해 여행을 떠났으며, 예약을 취소했던 11월 초 출발 커플이 다시 예약을 하는 등 허니문 쪽 타격은 당초 우려만큼 크지 않다”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허니문은 11월중에 정상화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제이슨여행사 관계자도 “허니문은 웬만하면 그대로 강행하는 특징이 있어서인지 11월 예약자의 경우 문의만 많을 뿐 아직까지 큰 동요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허니문 이외의 패키지와 상용 수요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는 상황이다. 비교적 목적지 변경이 쉽다는 특성과 고객의 안전을 고려한 여행사의 타 지역 유도 활동 등이 맞물려 인근 괌이나 사이판, 태국 등지로의 목적지 변경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적어도 2∼3개월은 지나야 패키지 및 상용 분야가 회복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비록 괌, 사이판, 태국 등 인근 지역이 발리 수요흡수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혜 업계의 표정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반짝 수요’인데다가 발리에서 발생한 냉각기류가 동남아 시장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리 테러 사건에 이어 지난 17일에는 필리핀 민다나오 섬 삼보앙가 시에서 연쇄 폭발 사건이 발생해 여행불안심리는 동남아 전체로 급속도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하나투어의 경우 하루평균 700명 가량이었던 동남아 전체 모객량이 지난 17일의 경우 약 250명에 그치고 말아 평상시 수준에서 60% 이상 곤두박질 쳤다. 모두투어 관계자 또한 “발리 자체는 완전히 침체됐으며, 과연 동남아 시장 전체에 어느 정도까지 악영향을 끼칠지가 최대 관심 사항”이라고 말했다.

한 태국전문 랜드사 소장은 “예약변경 수요가 많이 들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곧 동남아 전체가 같은 취급을 당할 게 뻔하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불안감을 나타냈다. 이런 불안심리를 증명하듯 태국관광청은 적극적으로 강화된 치안상태를 알리고 있으며, 필리핀의 경우에는 리차드 J 고든 관광장관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오는 26일부터 전국 순회 설명회를 개최하면서 필리핀 관광의 안전성을 강조할 예정이다.

향후 사태 전개 방향이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일부 발리 전문 랜드들은 시장환경 변화에 맞춘 민첩한 발놀림을 보이고 있다. 폭탄 테러사건으로 인도네시아 여행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만큼 앞으로 호텔비 등 지상비가 대폭 하락할 것이라는 예상을 바탕으로 현지 호텔 등과의 가격 협상 작업에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최대의 여행수요국가였던 호주는 이번 테러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어 상당 기간 동안 발길을 끊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일본과 유럽 등 다른 국가들도 비슷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 랜드들의 민첩한 움직임은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물론 한국인들의 여행심리가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12월 대선 이후부터는 시장이 정상 수준에 근접할 것이라는 기대가 전제로 깔려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기대대로 시장이 움직여주고 앞으로 이번과 비슷한 테러사건이 추가로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경쟁력 있는 요금으로 한국 여행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로선 일종의 ‘모험’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너무 많은 업계 외부의 불안요소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발리 테러사건에 따른 여행업계 침체는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걸프전과 IMF 때와 같은 암울한 상황이 재연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우려는 업계 전체의 의견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여행업계의 위기의식은 극도로 팽배해 있다. 발리만의 문제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남아 시장만의 문제도 아닌 여행업계 전체의 문제라는 얘기다.

모 여행사 관계자는 “추가 테러사건 등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최소 한 달 동안은 홍역을 앓을 게 뻔한데 용케 버텨낸다 해도 12월 대선 정국이 또다시 여행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며 더군다나 “미국이 언론보도대로 실제로 내년 1월에 이라크를 공격하게 되면 여행업계는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 9월부터 이어온 실적부진으로 그러잖아도 연쇄도산의 조짐이 일었는데 발리 테러사건을 계기로 현실화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며 “경제상황과 각종 대외 여건이 여행업계에 치명적인 쪽으로만 치닫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이 정작 답답함을 느끼는 부분은 상황이 이런데도 업계에서 손 쓸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이다. 여행업계 내부의 문제보다는 외부 충격에 휘둘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가격을 조정하거나 마케팅을 강화하는 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별다른 돌파구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좋은 쪽으로 사태가 진정되기만을 바라볼 뿐이다. 외부 충격에 너무 약한 여행업계의 근원적인 구조가 아쉬울 따름이다.”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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