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끝자락에 강원도에 다녀왔다. 
산과 바다, 마을과 골목, 갤러리와 양조장까지.
겹겹이 쌓여 있는 온정이 따뜻하고 포근했다.

속초 Sokcho

●돌담 따라 타박타박
상도문 돌담 마을


속초 여행은 여러 번 했었지만 ‘상도문 돌담 마을’은 처음이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여행자 센터 겸 여행사 감자투어 사무실인 ‘문화공간 돌담’이 여행자를 반긴다. “옛 방앗간 자리였고, 정미소가 됐다가, 마지막엔 마을 창고로 쓰이던 곳을 이렇게 여행자 센터로 바꿨는데 반응이 너무 좋아요.” 이번 여행의 안내자인 감자투어 최문경 실장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한다. 

설악산 아래 500년 된 이 마을은 돌로 쌓아 올린 담장이 이어지고, 대문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돌담 곳곳엔 돌조각으로 만든 고양이, 강아지, 참새 등의 조형물들이 이어진다. “마을의 특성을 살려 예술가들을 초청해 조형물들을 꾸몄어요. 돌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살려 보자는 뜻이었죠.” 마을 입구의 슈퍼마켓은 앞으로 셀프 사진 스튜디오로 운영될 거라고 한다. “슈퍼마켓 집 아드님이 사진가거든요. 본업을 살려서 고향에 문화공간을 만드는 거죠.” 그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골목을 따라 돌담이 이어지는 마을들을 둘러보다 양철과 유리병으로 꾸며진 정배씨네 집에 들어섰다. “마을 사람들끼리는 정배씨네 집이라고 부르는 김정배씨의 집인데, 방송에 나오고 나서 좀 유명해졌어요.” 정배씨가 잠시 나와 일행들에게 토마토 달인 차를 내어 주며, 마을에 놀러 오는 사람이면 누구든 이렇게 반긴다며 웃는다. 정성스레 내어 준 토마토 차를 호로록 마시니, 돌아오는 길에 그 마음이 기억나서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주소: 강원 속초시 도문동 상도문 돌담 마을

 

●글귀로 마음을 전하는 동네 서점
문우당 서림


여행을 오면 꼭 책방에 들르는 습관이 있는데, 이번 여행에서도 로컬 서점에 들렀다. 2대째 내려오고 있는 속초의 자부심인 ‘문우당 서림’이다. 1984년에 16m2 남짓한 공간에서 처음 문을 열었고, 2002년에 지금의 자리로 확장 이전했다고 한다.

보통의 서점과 다른 점이라면 200여 종의 독립출판물을 함께 다룬다는 것! 그 밖에도 신간이나 베스트셀러가 아니라 오래된 책을 눈에 띄는 자리에 놓는다거나, 책을 구매하면 여러 글귀 중 손님이 선택한 글귀를 골라 종이봉투에 달아 주고 스티커와 책갈피도 준다는 것 등 다양하다.

“서점이 단순히 책을 사는 곳이 아니라 글을 경험하는 곳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2층 벽면과 천장의 전등에 좋은 책의 글귀들을 담아 디자인을 살렸죠. 실제로 저 글귀들을 보고 나서 어떤 책 속의 글인지 물어보고 그 책을 사는 손님들이 많아요.” 문우당 서림의 2세대인 해인씨가 자세히 알려 준다. 독립출판물 서가에서 책 한 권을 사 들고 나오니 어쩐지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로 45  
영업시간: 평일 09:00~21:20, 주말 09:00~21:00 

 

●속초의 지명을 살린 수제 맥주들 
크래프트 루트


산 좋고 물 맑은 동네에선 좋은 술이 나온다고 했던가? 속초에 왔으면 속초 맥주를 맛봐야 하는 법! 크래프트 루트는 수제 맥주 양조장 겸 브루 펍(brew pub)이다. 양조장은 대중에 개방돼 있지 않지만, 주인장은 우리 일행을 위해 특별히 한 바퀴 둘러볼 수 있게 해 줬다. 당화, 여과, 가열 등의 과정을 거치는 맥주 제조 과정을 돌아보고 숙성조에서 숙성되고 있는 맥주를 맛봤다. 일행 중 누군가 “그래, 이 맛이지!”라고 감탄사를 내뱉는다. 

펍에서는 이 양조장에서 만드는 다양한 맥주를 판다. 속초 곳곳의 지명을 살린 맥주 이름은 ‘동명항 페일 에일, 대포항 스타우트, 갯배 필스너, 아바이 바이젠’ 등으로 정감 있다. 특히 ‘동명한 페일 에일’은 각종 대회에서 상을 휩쓸어 인기가 좋다고 한다. 맛을 보니 뒷맛이 상쾌하고 레몬, 라임, 귤 향이 산뜻하게 감돈다.
 
주소: 강원 속초시 관광로 418  
영업시간: 일~목요일 12:00~22:00(라스트 오더 21:00), 금~토요일 12:00~00:00(라스트 오더 23:00)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아름다운  
설악산국립공원


속초에 왔다면, 설악산 근처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새벽 산행을 해도 좋다. 비선대까지 한 시간 반, 비룡폭포까지 두 시간 정도, 흔들바위까지 한 시간 반 이상 걸린다. 가볍게 트레킹 하듯 비선대까지만 가도 충분하다. 추운 날씨에도 한참 걷다 보면 금방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산은 직접 올라가야 제맛이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멀리서 바라보며 망중한에 빠지는 이들도 있다. 설악산국립공원 근처에 숙소를 잡고 이른 아침 설악산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해의 마지막을 강원도에서 보내는 것에 감사하면서.
 
주소: 강원 속초시 설악산로 833  

강릉 & 평창 Gangneung & Pyeongchang


 

●여전히 아름다운 바다
안목해변


속초에서 한 시간여 떨어진 강릉은 속초보다 훨씬 크고, 그만큼 많은 해변을 품고 있다. 안목해변, 강문해변, 소돌해변 등 해안선을 따라 저마다 특색 있는 해변들이 이어진다.

안목해변은 그중에서도 카페 거리로 유명하다. 특히, 지금 같은 계절엔 카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잔하기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커피 한 잔씩 마시며 일행들과 다 함께 바다를 바라보니 천국이 따로 없달까. 마음이 내키면 강문해변에서 안목해변까지 트레킹도 가능하다. 솔 숲을 따라 걷다 보면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하다는 누군가의 설명에, 다음에 오면 다 같이 트레킹을 해 보자고 입을 모은다.
 
주소: 강원 강릉시 창해로14번길 20-1

 

●아빠와 딸이 외양간 자리에 만든 공간
갤러리 소집


이렇게 작은 시골 마을에 갤러리라니! 멀리서 작은 갤러리가 보이자 설레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지역 방송국 카메라 감독이셨고, 저는 방송작가였어요. 어느 날 함께 강원도를 여행하며 아버지는 사진을 찍고 저는 글을 엮어서 책을 썼죠. 그게 계기가 되어 함께 뭔가 해 보자고 마음먹게 됐어요.” 두 사람은 2019년 봄에 ‘갤러리 소집’을 열었다. 기와집의 외양간이었다가 창고처럼 방치된 자그마한 건물이 근사한 갤러리로 변모했다.

일행들이 방문했을 때는 마침 아버지인 고종환 사진가가 강릉을 테마로 작업한 사진 전시가 한창이었다. “평소에는 주로 신진 작가들의 전시를 열어요. 대관료를 낮추어 데뷔의 문턱을 낮추고, 대중에게도 새로운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하고 싶어요!” 딸 고기은 작가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한다.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갤러리 안 미니 카페에서는 2,000~3,000원의 가격에 음료를 사 마실 수 있다. 바로 옆 건물인 기와집은 ‘소집 글방’으로 운영되는데 소모임용으로 대관할 수도 있다고 한다.
 
주소: 강원 강릉시 공항길 30번길 5
운영시간:  매일 13:00~18:00, 월요일 휴관
인스타그램 @storysozip  

 

●내 손으로 만들어 보는 술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


강릉에도 속초처럼 강릉을 대표하는 양조장들이 있다. 그중에서 ‘강릉 브루어리 바이 현’은 여행자뿐 아니라 현지인들이 엄지를 치켜 올리는 곳이다. 주인장이 직접 만드는 막걸리와 맥주를 맛볼 수 있고 직접 만들기 체험도 할 수 있는데, 특히 방탄소년단이 찾아와 맥주 만들기 체험을 하고 간 뒤로 손님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양조장 주인장인 김상현 대표와 함께 막걸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고두밥에 물을 붓고 조물조물 주물러 잘 섞이도록 하는 데만 꽤 힘이 들어간다. “잘 섞인 상태로 통에 담아 집에 가져가서 서늘한 곳에 두고 발효가 끝나면 한 달간 숙성했다가 마시면 됩니다”라는 김 대표의 말에 벌써 어떤 맛일지 기대가 부푼다. 

김 대표는 평소 혼자 맥주와 막걸리를 만든다고 한다. “술은 만드는 사람의 마음과 손을 많이 타서 함부로 사람을 들일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고집이 대단하다. 열심히 막걸리를 만든 여행자들을 위해 그는 여러 가지 맥주와 막걸리를 내 준다. 마치 화이트 와인 같은 산미가 느껴지는 ‘강릉 막걸리’가 가장 인상적이다. “강릉 쌀인 오륜미를 사용해 만드는데 막걸리보다 맑고 신맛이 있어서 화이트 와인 같은 풍미가 납니다.” 쌉쌀하고 새콤한 맛이 좋아서 계속 마시다 보니 어느새 얼굴이 붉어진다.
 
주소: 강원 강릉시 율곡초교길11번길 9  
영업시간: 매일 17:00~23:30, 일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gangneung_brewery

 

●비빔밥 한 그릇도 전통 체험이 되는 곳 
한국 전통 음식 체험관 정강원


이대로 서울로 돌아가기 아쉬워 들른 곳은 평창에 있는 ‘한국 전통 음식 체험관 정강원’이다. 너른 한옥의 솟을대문을 지나니 수백여 개의 장독이 늘어선 장관이 펼쳐진다. 정강원은 한식 전문가 조정강 선생이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사재를 털어 지은 곳이다.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고 한복 체험도 할 수 있으며 숙소로 쓰이는 온돌방에 묵을 수도 있다.

마치 거대한 작품 같은 장독대의 풍광을 카메라에 담고 난 후 비빔밥 체험에 들어갔다. 조정강 선생의 가족이 나와서 비빔밥 만들기 시연을 하는데 그 모습이 범상치 않다. 잡곡밥이 담긴 커다란 목기에 고사리, 곤드레, 곰취, 호박, 무나물, 가지, 표고버섯 등의 나물을 얹고 달걀지단으로 꽃의 수술과 암술 같은 장식을 더해 ‘꽃 비빔밥’을 만든다. “감자, 양파, 파, 호박, 오이, 가지 등의 채소를 직접 재배하고 장도 모두 직접 담급니다”라는 설명에서 정성이 듬뿍 느껴진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비벼서 오목한 그릇에 담아 준 비빔밥이 너무 맛있어서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정강원을 떠나는 길, 어둑하게 해가 저무는 한옥의 선들이 고아하기 그지없다. 강원도가 내어준 공간과 음식은 강원도 특유의 멋과 맛으로 오래도록 기억될 듯하다.  
 
주소: 강원 평창군 용평면 금당계곡로 2010-13   
영업시간: 매일 09:00~19:00 명절 휴무

 

Travel Info
강원도의 맛

여행정보  |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속초

함경도식 순대
원조 동해 순대국

속초에서 맛볼 수 있는 함경도식 순대는 남쪽의 피순대와는 달리, 색이 밝고 곡물의 식감이 보들보들하다. 이런 북방식 순대를 깔끔하게 국밥으로 내어놓는 ‘원조 동해 순대국’은 1984년 문을 열어 37년 된 맛집이다. 순댓국 특유의 냄새가 없고, 국물이 맑아 평소 순댓국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맛있게 먹는다.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로129번길 35-17  
영업시간: 매일 07:00~21:00, 브레이크 타임 11:00~11:30, 16:00~16:30, 매주 화요일 휴무

3가지 방법으로 즐기는 물회
송도물회

속초항에 가면 횟집이 즐비한데, 그중 ‘송도물회’는 세 가지 방식으로 즐기는 삼색 별미로 잘 알려져 있다. 싱싱한 세꼬시와 각종 채소가 채반에 가득 담겨 나오면 취향에 따라 비빔회, 물회, 회덮밥 등으로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채소에 초고추장을 넣고 세꼬시를 듬뿍 넣어 세꼬시 비빔회를 맛본 후 장치 매운탕으로 마무리하면 속이 든든하다. 
 
주소: 강원 속초시 중앙부두길 63  
영업시간: 매일 09:00~21:00, 브레이크타임 15:00~17:00, 매월 둘째, 넷째 주 화요일 휴무 

옛 맛을 간직한 속초 막걸리
아바이 생막걸리

속초 아바이 순대타운과 설악산 등산로의 식당들에서 만날 수 있는 생막걸리 ‘아바이 생막걸리’는 ‘설악 프로방스 배꽃마을 양조장’에서 해양심층수를 사용해 만드는 막걸리다. 묵직하고 토속적이며, 탄산이 적고 산미가 살아 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가볍고 달콤한 막걸리가 아니라 걸쭉하고 깊은 옛 막걸리 맛이랄까. 순댓국과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리고, 감자전, 가자미식해 등의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강릉

고소함의 극치
차현희 순두부 청국장

강릉의 명물 음식 중 하나는 초당 순두부다. ‘초당’은 허균, 허난설헌의 부친 허엽의 호(號)다. 허엽이 서민들의 생계를 위해 두부 만들기를 권한 것이 초당 순두부의 시초라 전해지고 있다. 초당 순두부는 바닷물 간수로 고소한 것이 특징! 그중에서도 ‘차현희 순두부 청국장’은 이름 그대로 청국장으로 맛을 낸 순두부 전골을 판다. 구수하고 진한 맛이 매력적이며, 바로 옆 카페에서 파는 순두부 젤라또도 별미다.
 
주소: 강원 강릉시 초당순두부길 96  
영업시간: 매일 07:30~20:00, 브레이크타임 16:00~17:00

▶여기서 머물면 좋아요
설악산 전망
켄싱턴 호텔 설악

시설이 깨끗하고 인테리어가 멋스러우며 전 객실이 설악산 전망이다. 국내외 스타들의 소장품, 서명 프린팅, 사진 등을 전시한 공간이 이채롭다. 조식당에서 설악산을 조망하며 식사하는 시간도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도보 5분 거리에 ‘설악산 소공원’이 자리해 산책하기도 좋다.
 
주소: 강원 속초시 설악산로 998

 

글·사진 나보영  취재협조 한국관광개발연구원, 감자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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