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이 잔뜩 쌓인 바쁜 일상을 살아내다 문득 자연에 안겨 믿음직한 건강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싱그러움을 찾아 헤매다 전북 완주에 닿았다.

●곱게 늙는다는 것
화암사

불명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화암사(花巖寺)는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만큼 오르는 길이 순탄하지 않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는 법이다. 신라시대 연화공주가 엄동설한에 핀 연꽃을 먹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데, 그 연꽃이 있던 자리가 바로 화암사다.

연화공주 정원 입구에서 출발해 산모기 가득한 숲길과 바위길을 지나 나무 계단을 오르고 마지막으로 147개의 가파른 철제 계단을 오르면 안도현 시인의 시 <화암사, 내 사랑>과 함께 저 멀리 화암사의 얼굴이 보인다. 40분 동안의 고행이 스르르 희미해진다. 틀림없이 반하게 될 것이라는 시인의 말은 사실이었다. ‘잘 늙은 절’이라는 수식어가 꼭 들어맞는다. 그 흔한 일주문과 화려한 단청 없이 우화루, 극락전, 요사로만 구성된 아담한 절이지만 천년이 넘는 기나긴 세월을 견딘 멋과 위엄에 절로 압도된다. 소박하면서도 꼿꼿하게 딱 화암사처럼 늙고 싶다.

사찰 주변으로 댑싸리, 새깃유홍초, 무궁화 등 야생화가 옹기종기 피어 있다. 샛노란 복수초와 생강나무 꽃, 얼레지, 매화로 가득한 화암사의 봄이 기다려진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이제 그만
싱그랭이 에코정원

완주 싱그랭이 마을을 걷다 보면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나 700년 수령의 시무나무만큼 오랜 수령의 나무들뿐만 아니라 각종 야생화도 만나게 된다. 태풍,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없고 토질이 좋으며 일조량이 풍부한 완주는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식생이 다양하다. 게다가 자연을 보존하려는 마을 주민들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생태 체험의 폭이 넓다.

싱그랭이 마을 안에 조성된 에코정원은 씨를 뿌려 식물을 키우는 육묘장과 분재 및 관상용 식물이 놓인 전시장으로 구성된다. 에코 매니저와 함께 온실을 둘러보면 ‘이름 모를 야생화’로 퉁치던 세계에서 벗어나 유레카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풍선덩굴, 차수국, 댑싸리, 붓들레아, 콜레우스 등 야생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이름을 차근차근 알아가니 식물도감을 처음 보는 호기심 천국의 어린 아이로 되돌아간 기분이 든다. 깊은 산속을 헤매지 않고도 야생의 세계를 경험하는 안전하고 편리한 방법이 바로 이곳에 있다.

 

●친환경 두부 요리 전문점
싱그랭이 콩밭식당

싱그랭이 콩밭식당에 도착하자 드넓게 펼쳐진 푸릇푸릇한 콩밭이 손님맞이를 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콩이 두부가 되어 허기진 배를 따뜻하고 건강하게 채워 줄 것이다. 식당은 순두부, 들깨순두부, 짬뽕순두부, 모두부, 두부전골 등 각종 두부 요리를 선보이는데 그중에서도 묵은지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두부찜을 추천한다. 꽤 얼큰하고 알싸한 국물에 놀라고, 거칠어 보이는 큼직한 두부에서 콩 본연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 느껴져 감탄이 나온다. 정갈하게 나온 밑반찬은 담백하다. 음식과 함께 창 너머로 보이는 싱그러운 콩밭과 감나무 풍경도 천천히 음미하자.

●만경강에서 발견한 예술
비비정예술열차 

카페, 레스토랑, 아트숍, 테라스로 구성된 비비정예술열차가 만경강을 가로지르는 폐철교 위에서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리 한가운데 멈춰 있는 이 기차에 머물다 보면 시간도 멈춘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만경강에 잔물결이 일거나 억새밭이 햇살에 반짝이거나 가끔 자전거가 지나가는 모습이 보일 때 그제서야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아차린다.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던 ‘비비정’이라는 정자와 호남선 철교를 건너는 열차를 풍경 삼아 고즈넉한 정취를 즐기기도 한다. 해 질 무렵에는 하늘과 땅과 강이 모두 붉게 물들어 경계가 허물어지는 모습이 장관이다.

●로컬 푸드로 정성 들인 한정식
봄차반

봄차반은 완주 농산물을 활용해 정겹고 푸짐한 로컬 밥상을 내어 주는 한정식집이다. 식당 입구에 가지런히 놓인 장독들과 각종 꽃잎, 발효청, 천연발효식초 등이 담긴 유리병을 보면 손수 음식을 준비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느껴진다. 봄차반 정식을 시키자 흑임자죽부터 토마토 샐러드, 가지 새싹말이, 홍어삼합, 양념게장, 떡갈비, 생선구이 등 음식이 끊임없이 나온다. 예스러운 도자기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져 나와 없던 식욕도 샘솟게 만든다. 간이 세지 않고 담백하며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이라 식사 후에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고 산뜻하다. 봄차반표 발효청 에이드나 꽃차로 마무리하면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식사다.  

 

글·사진  장세희 인턴기자  취재협조 전라북도관광마케팅종합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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