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본토를 구성하는 4개의 섬 중 가장 작은 시코쿠, 그 동부에 도쿠시마현이 있다. 
여행을 좀 해봤다는 사람들에게 알음알음 소문난 곳이다. 생소해서 더욱 좋은 여행, 
나만 몰랐던 즐거움을 도쿠시마에서 찾았다.

오나루토대교 아래 유속은 시간당 최대 20km에 이를 정도로 빠르고 거칠다
오나루토대교 아래 유속은 시간당 최대 20km에 이를 정도로 빠르고 거칠다

●시코쿠 헨로미치의 시작 점, 
료젠지

료젠지는 시코쿠 88개 사찰을 돌아오는 불교 성지 순례길, 시코쿠 헨로미치의 시작점이다. 시코쿠 헨로미치는 무려 1,400km나 이어진다. 료젠지는 729~749년 무렵 쇼무 왕의 칙명에 따라 승려 교기가 창건했다. 영내로 들어서면 600년의 역사를 지녔다는 다보탑과 커다란 비단잉어가 노니는 방생연못 사이로 순례자(오헨로상)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곤고즈에(지팡이), 스게가사(삿갓) , (하쿠이흰옷) 등으로 복장을 갖췄다. 순례길은 일본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승려로 꼽히는 홍법대사 구카이(774-835)의 발자취 위에 놓였다. 순례자의 삿갓에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홍법 대사가 함께 걷는다는 뜻이다.

시코쿠 헨로미치는 첫 번째 사찰 료젠지에서 시작해도 되고 88번째 오쿠보지에서 거꾸로 걸어와도 된다. 또한, 최근 몇 년간은 상황에 맞게 구간을 나눠 걷는 구기리우치(구획 걷기)가 유행이다. 이동 수단도 꼭 도보가 아닌 자동차, 자전거 등을 선택해도 좋다. 료젠지에서는 헨로미치에 대한 많은 정보가 공유된다. 순례자 중에는 이미 완주의 경험을 지닌 이들도 있다. 그리고 걷기에 나선 이유 또한 인간사만큼이나 다양하다. 

 

●좀 더 느슨해질 기회, 
이타토쥬루베의 아와닌교조루리

닌교죠루리는 일본의 전통 인형극이다. 죠루리(극적 낭송), 샤미센(일본의 전통 3현악기), 닌교(인형)로 구성되며 분라쿠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도쿠시마는 일본 내에서도 인형극의 전통이 계승 발전되어온 대표적인 지역으로 꼽힌다. 

아와쥬로베야시키는 국가 중요무형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아와닌교조루리(아와는 도쿠시마의 옛 이름이다)를 상시 공연하고 있는 도쿠시마현립극장이다. ‘경성 아와의 나루토’란 타이틀을 가진 인형극은 죄상도 밝혀지지 않은 채, 제후에 의해 처형당한 이타토쥬루베의 아내와 딸에 관한 슬픈 이야기다. 짧고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곳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작품이다. 게다가 더욱 특별한 것은 극장으로 쓰이는 고택이 바로 이타토쥬루베의 집터라는 것이다.

닌교는 검은 옷을 입은 세 명의 산닌즈카이(인형사)에 의해 조종되는데 이는 닌교죠루리의 공통된 특징이다. 톤이 높은 일본어 대사는 극장 위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영어로 번역되며 사미센의 반주와 어우러져 공연 내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30분의 공연이 끝나면 관객들은 유난히 머리가 큰 아와인형과 함께 사진을 찍을 기회가 주어진다. 그리고 원한다면 전시실로 자리를 옮겨 직접 인형을 작동해 볼 수도 있다.

 

●일 년 내내 아와오도리를 만나는 법, 
아와오도리회관

아와오도리는 도쿠시마시에서 8월12일부터 15일까지 열리는 축제다. 수십 개의 렌(아와오도리를 추는 단체·그룹)으로 구성된 전통 무용수들의 행렬, 춤과 음악이 어우러진 아와오도리는 일본 내에서도 소문난 축제로 꼽힌다. 이 시기 일본 전역에서 몰려든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도쿠시마시 전역을 들썩이게 한다.

아와오도리회관은 8월 축제 때가 아니어도 아와오도리 춤을 상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관객들은 아와노카제란 이름을 가진 전속 렌의 공연도 관람하고 함께 어울려 춤을 배워보기도 한다. 아와오도리 춤은 꽹과리, 피리, 샤미센, 북 등으로 연주하는 조메키(2박자, 소란스럽다는 의미)를 기반으로 한다. 율동 또한 매우 단순하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춘 채 손동작으로 리듬을 탄다. 얏토사는 춤을 시작할 때와 중간에 넣는 추임새와 같은 외침이다. 누군가 ‘얏토사’라고 하면 ‘아, 얏토, 얏토’하고 답해야 한다. ‘오랜만이야, 잘 있었어?’라는 뜻이란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들은 간단한 동작을 배우게 된다. 그리고 무용수들을 따라 무대를 돌며 ‘얏토’를 외친다. 잔잔하던 여행이 흥으로 갈아타는 순간이다. 

 

●아이오관에서의 실속 있는, 
아이조메 체험 

아이조메는 남염을 뜻하는 말로 여기서 아이는 ‘재팬블루’라 불리는 남색이다. 아이조메의 재료로 쓰이는 ‘아와 쪽’은 다채로운 색채 미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에도시대부터 번성해서 1700년대에는 전국 시장을 지배할 정도로 성장했고 도쿠시마에 큰 부를 가져다줬다. 지금도 ‘아와 쪽’은 생산량과 품질 면에서 일본 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아이노관은 염료를 유통하던 대상인 오쿠무라 가문의 옛 저택 13동(19세기 초 건축)을 기증받아 개관한 역사박물관이다. 시설 내에는 옛 도쿠시마에서 사용하던 염색 도구와 자료들은 물론 쪽의 재배로부터 가공까지를 재현한 미니어처 구성물이 배치돼있다. 전시실을 돌아본 여행객들은 손수건, 반다나, 핸드타월 등을 만드는 염색체험에 나서게 된다. 도쿠시마현 내에는 염색 장인들이 운영하는 공방이 꽤 많이 있다. 직접 아이조메도 체험하고 삼박한 기념품을 하나 만들어 갈 수 있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다.

 

●최고의 액티비티를 만나는, 
나루토해협

오나루토대교는 도쿠시마와 아와지섬 사이에 놓인 총연장 1,629m의 다리다. 시코쿠와 혼슈는 오나루토대교와 아카시대교(3,911m, 아와지섬과 고베를 잇는 다리)를 통해 육로로 연결돼있다. 오나루토다리 아래로는 나루토해협이 지난다. 세계 3대 조류로 꼽히는 이곳의 유속은 시간당 최대 20km에 이를 정도로 빠르고 거칠다. 또한, 나루토해협은 거대한 소용돌이로도 유명하다. 독특한 해저지형이 강한 해류를 만나 생겨나는 현상으로 많은 관광객이 압도적인 광경을 보기 위해 오나루토를 찾아온다.

우치노미치는 오나루토교 교각 아래 설치된 관조, 체험시설이다. 관광객들은 450m를 걸으며 해상 산책의 즐거움을 누린다. 이때 길 양면의 메쉬펜스 너머로 해협의 자연미를 음미하고 조금은 아찔하지만, 8개의 투명 바닥 창을 통해 격렬한 소용돌이와 조류의 흐름도 관찰할 수 있다. 우치노미치 끝점에 있는 전망대도 놓쳐서는 안 된다. 태평양과 세토내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형 망원경을 통해 오나루토 가교 기념관 ‘에디’, 오스카 국제미술관, 나루토 공원 ‘에스카힐’ 등 주변 명소들까지 하나하나 살펴볼 수도 있다.

나루토는 큰 소리를 내는 세토라는 뜻이다. 직접 조류의 흐름을 듣고 시각적 압도감을 체험하려면 나루토 관광유람선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세상의 명화를 친근하게, 
오츠카 국제미술관

오츠카 국제미술관(Otsuka Museum of Art)은 오나루토대교에 인근한 나루토 공원(Esplanade) 내에 있다. 일본에서 두 번째 큰 미술관인 이곳은 포카리스웨트, 오로나민C, 우르오스 등으로 알려진 오츠카 제약의 75주년 기념사업으로 1998년 설립됐다. 미술관에는 회화의 전시대를 아우르는 1,000점이 넘는 세계의 명화가 걸려있다. 하지만 모든 작품은 실물 크기의 세라믹 복제품이다. 작품들은 가까이 볼 수도 있고, 촬영도 가능하며 더구나 만져볼 수도 있다. 창립자 오츠카 마사히토의 설립목적은 뚜렷하다. 도판에 재현된 명화 본래의 색채를 고스란히 후세에 남기겠다는 신념이다. 

오츠카 국제미술관은 규모부터가 남다르다. 작품의 감상루트가 무려 4km에 이른다.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이 소요되며, 중간에 식사하고 관람을 이어가는 경우도 허다하다. 관람객은 첫 번째 홀에서부터 입이 벌어지게 된다. 천지창조를 위해 시스티나성당까지 실물 크기 그대로 재현해 놨기 때문이다. 동선을 이어가는 동안 관람객들은 그들이 알만한 화가와 작품들을 모두 만나게 된다. 다 음번 도쿠시마 여행에도 오츠카 국제미술관을 다시 꼭 방문해볼 생각이다. 낯설었던 명화들이 조금 더 친근하게 다가올지도 모르니까.

 

▶food  

본가 마쓰우라 주조장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도쿠시마의 대표급 양조장이다. 브랜드는 나루토타이(naruto tai), 여기서 ‘타이’는 육질이 단단하고 맛있기로 유명한 나루토해협의 도미를 뜻한다. 이곳에서는 사케가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공정과 정미소 등의 양조 시설을 견학하고 술의 시음도 즐길 수 있다.

 

시나소바 완완켄 본점

도쿠시마라멘은 1990년대부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지에서는 시나소바라 부르며 돈코츠 육수에 진간장을 더하고 양념 된 돼지 삼겹살을 올리는 것이 특징이다. 1998년 오픈한 완완켄은 도쿠시마라멘의 맛집으로 통한다. 가게 이름은 야구선수 오 사다 하루에서 따왔다. 닭고기, 돼지 뼈, 간장로  국물을 우려내고 100% 도쿠시마 밀로 직접 제면한다. 

 

일본 도쿠시마 글·사진=김민수 Travie writer

저작권자 © 여행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