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여행사 고객 상담
초개인화 경험으로 ‘고도화’
AI가 단순·반복적 업무 대신
여행 특화 AI 개발 경쟁
시장은 달라졌다. 일할 사람은 갈수록 줄어드는데, 소비자들의 요구는 갈수록 정교해진다. 그래서 여행사들도 달라졌다. 상품이 유통되는 온라인 무대에서 기획-생산-마케팅-판매-정산-고객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과정에 인공지능(AI)을 투입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선된 효율성만 해도 확실한 편이니 앞으로 더 달라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장 먼저 달라진 ‘상담창구’
국내 여행사들이 인공지능(AI) 도입에 본격적으로 속도를 내기 시작한 건 코로나19를 기점으로다. 기업마다 도입 시점이나 속도, 투자 규모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그 이유나 기대하는 효과는 비슷한 맥락을 나타냈다. 내부적으로는 자동화를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외부적으로는 소비자들에게 정교하게 개인화된 구매 경험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특히 이전까지는 소비자들의 구매 과정에 필요한 기능을 집중적으로 도입했다면, 코로나19 장기화로 여행산업 전문 인력들이 대거 이탈한 이후로는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줄이고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도 급속한 변화가 이뤄졌다.
가장 가시적인 변화는 소비자 상담 분야에서 나타났다. 도입 초기 시나리오 기반으로 설계된 버튼형에 그쳤던 챗봇은 변화를 거듭하며 역할을 넓히는 모습이다. 하나투어는 올해 들어 기존 시나리오 기반 챗봇 상담 서비스를 AI 서비스로 전환하고, 멀티 AI 에이전트 상담 서비스 ‘하이(H-AI)’를 선보이며 고객 상담 서비스를 고도화했다.
그 결과 지난 5월 기준 하이(H-AI) 이용자 수는 AI 채팅상담 때보다 295% 증가하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다. 예약정보를 기반으로 개인화된 여행경험을 지원하는 ‘AI 채팅상담’은 론칭 6개월 만에 이용자 수가 10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마이리얼트립의 경우 반복적인 질문이 많은 항공권 문의는 AI 상담사(챗봇·콜봇)가 약 30%를 자동 응대하는 대신, 상담 직원은 보다 복잡한 문의에 집중할 수 있게 되면서 응대 효율과 품질을 동시 개선했다고 평가했다. 당장 모든 문의를 챗봇이 대체할 수는 없지만 AI는 계속해서 문의에 대한 맥락을 이해하고, 추천하고, 예측까지 가능한 수준으로 급속한 고도화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더 정교한 응답 모델로 개선될 것이라는 데 이견은 없어 보인다.
다수의 여행사들은 초개인화된 여행 경험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AI 활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소비자 개개인의 여행 취향과 행동 패턴을 분석해 상품을 추천하고, 여정을 설계하는 등 보다 정교한 구매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대표적으로 놀유니버스, 마이리얼트립, 모두투어, 올마이투어닷컴, 참좋은여행, 하나투어 등이 여행 이력과 행동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인 맞춤형 상품을 추천하는 기능 고도화에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노랑풍선의 경우 소비자의 리뷰를 AI가 요약하고 핵심 키워드별로 분류해 한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고객리뷰 기능을 개편해 상품 탐색 과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는 여행 상품을 추천하는 기능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앞으로 소비자가 느끼는 경험의 밀도는 더욱 촘촘해질 전망이다. 여행사들이 항공, 숙소, 패키지·투어 등 여행 전반에 걸쳐 AI가 최적의 일정을 자동 설계하고 예약, 변경, 결제까지 지원하는 통합형 서비스로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반복적인 업무는 AI에게
여행사들은 내부적으로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데에도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반복적이고 수작업이 많던 업무들의 자동화다. 여러 여행사들은 음성인식(STT) 기술을 활용해 상담 내용을 실시간으로 텍스트화하고 상담 이력을 체계적으로 저장·분석하는 기능을 도입하고 있다. 그중 모두투어는 이를 통해 상담 시간을 약 35% 단축시키는 효과를 얻은 것으로 확인됐다. 예약시 필요한 여권 정보 입력 역시 AI 기반 OCR 기술과 외부 데이터베이스(외교부 API 등) 연동을 통해 자동화되면서 오류율을 줄이고, 관련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 또한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AI는 단순 반복적인 업무를 넘어, 보다 복잡한 기획·설계 업무에도 점차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기획자가 참고할 수 있는 초안을 자동 생성하거나, 여행지·호텔 정보를 최신으로 유지하고 시장 가격을 비교 분석하는 시스템을 통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등 복잡한 업무에도 AI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면서 상품 기획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일례로 마이리얼트립은 AI를 활용해 여행 콘텐츠 ‘테마'를 자동 생성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에는 하나의 테마를 만드는 데 20~30분씩 수작업이 필요했지만, AI 도입 이후 하루 만에 약 1,300개의 테마를 생성, 총 450시간 분량의 작업을 대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밖에도 참좋은여행의 경우 SNS 게시물, 기획전 배너, 상세 페이지 등 마케팅 디자인 영역에서도 자동화 기능이 적용돼 성과를 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에는 여행사들이 LLM(Large Language Model) 기반 시스템을 속속 도입하며, 단순 자동화에서 대화형·추론형 AI로 전환을 꾀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자연어로 질문을 던지면 필요한 데이터를 조회하고 상품을 추천하며, 실시간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화해 직원들이 더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특히 이를 통해 직관에 의존했던 결정들이 데이터 기반의 판단으로 전환되면서, 보다 정밀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가능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하나투어는 GPT 계열 LLM과 AWS 기반 모델을 멀티 AI 상담 시스템 ‘하이(H-AI)’에 적용해 고객과의 대화 맥락을 파악하고 예약 기반의 정교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참좋은여행도 LLM을 ERP 시스템에 연동한 AI 에이전트를 개발 중이고, 올마이투어닷컴은 독자적인 학습을 거친 자체 LLM을 개발 중으로 여행 특화 AI 비서를 2026년 출시할 예정이다.
이처럼 업무 효율성 극대화를 경험한 여행사들은 앞으로도 업무 전반에 걸쳐 AI 기술을 적용하고 고도화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AI가 사람의 업무를 대체하기 보다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는 AI에 맡기고, 직원들은 고객과의 감성적인 교류, 창의적인 상품 기획, 예상치 못한 문제 해결 등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AI는 오히려 사람의 가치를 더 높이는 기술로 존재감을 넓힐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