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일상 속 깊숙이 파고든 AI의 손길(!)에 새삼 놀라곤 한다. 그리고 AI와의 일상에 적응하는 사람들, 이보다 더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의 속도에는 놀랄 틈도 없다.
최근 여러 여행 관련 기업들도 AI가 상담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줄줄이 공개했다. 이스타항공은 지난해 12월 도입한 AI 챗봇 ‘별이’를 통해 전화 문의가 월평균 24% 줄었고, 최근까지 약 5만명이 이용한 가운데 70% 이상이 챗봇만으로 상담을 마쳤으며 15%만이 상담원과의 채팅 기능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하나투어의 경우 ‘AI 환불금 캘린더’ 덕에 항공권 환불 문의는 40% 줄었고, 환불 티켓 수 대비 문의 건수 비율도 30% 정도 감소했다고 한다.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상담 내용을 텍스트로 기록하고 이를 분석, 저장해 데이터로 활용하는 여행사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 정도면 AI는 정말 혼자 일당백을 해내는 똘똘한 인재 아닌가?
이처럼 AI의 능력치가 하늘을 찌르는 와중에 얼마 전 제주도의 한 호텔 투숙객 전용 라운지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괜찮으시다면 제가 두 분의 남은 여행 일정을 추천해드려도 될까요?” 그렇게 시작된 상담에서 라운지 직원은 종이 지도를 펼쳐놓고는 산을 좋아하는지, 바다를 좋아하는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은지, 비행기 시간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묻고 내비게이션은 안내하지 않는 해안도로 드라이브 방법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1시간짜리 코스의 숲길, 운전시 주의 사항, 소금빵이 맛있는 카페, 보말 칼국수와 흑돼지 구이 맛집까지 꽉 찬 일정을 추천해줬다. 그리고 우리는 홀린 듯 그가 추천한 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실행하고 돌아왔다. 그 중에 흑돼지구이 식당은 인생 고깃집으로 등극했으니 이만하면 뜻밖의 여행 상담은 꽤나 만족스러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문득 최근 AI 대신 전문가 여행상담 유료화에 도전한 블루여행사를 더욱 응원하고 싶어졌다. 블루여행사는 지난 7월 중순부터 상담 전용 라운지를 오픈하고 상담비로 3만원을 책정했는데, 이 상담 비용에는 많은 함축적 의미가 담겼기 때문이다. 상담에 투입된 전문가의 시간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담원의 표정과 목소리 속에 담긴 진심, 오가는 대화 속 고객의 미세한 취향까지 읽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몇 초 만에 술술 기계적인 답변을 내놓는 AI를 이기는 기술이라는 확신 말이다.